1. 개요

국립조선도서관학교는 1946년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 내부에 설립된 사서 교육 기관이다. 이 학교는 광복 직후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총독부 도서관을 인수하여 개관한 국립도서관의 업무를 수행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3]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이었던 이재욱과 부관장 박봉석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1946년 2월 학생 모집을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4월 1일에 정식으로 개교하였다.[3]

본 교육 기관은 한국 현대 도서관학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학칙에 따라 1년의 수업연한으로 운영되었으며,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본과와 위탁생을 위한 별과를 설치하였다.[3] 학생 정원은 1학급당 30명으로 제한하였고, 입학 자격은 30세 미만의 남녀로서 고급중학교, 사범학교, 여자중학교를 졸업한 자로 규정하였다.[3] 입학금과 수업료는 면제되었으며, 급비생 제도를 운영하여 졸업 후 2년 동안 도서관이나 문화 기관에서 근무하도록 의무를 부여하였다.[3]

학교의 교수진은 국립도서관장과 부관장을 비롯하여 당시 각 대학교의 교수들이 출강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3] 이러한 교육 체계는 국가의 문헌을 수집, 정리, 보존하고 국민에게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 중앙도서관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4] 당시 국립도서관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자료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국가 체제에 걸맞은 전문적인 도서관 운영 체계를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4]

국립조선도서관학교는 1950년 5월까지 총 5회에 걸쳐 7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전문 사서 양성에 힘썼다.[3] 그러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인해 결국 폐교의 길을 걷게 되었다.[3] 비록 짧은 운영 기간이었으나, 이 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은 해방 이후 한국 도서관 체계의 근간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3] 오늘날 이 기관은 한국 도서관학의 태동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교육적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2. 설립 배경과 추진 과정

광복 이후 조선총독부 도서관을 인수하여 국립도서관을 개관하는 과정에서 도서관 운영을 전담할 전문 인력의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기존의 시설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대륙 침략 정책을 뒷받침하는 연구 자료를 수집하는 데 치중하였기에, 이를 민족의 문화적 자산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새로운 체계가 필요했다.[4]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이었던 이재욱과 부관장 박봉석은 사서 양성을 위한 교육 기관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3]

학교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는 1946년 2월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 첫 학생 모집이 이루어졌다.[3] 모집 과정에서는 도서관학의 기초를 다질 인재를 선발하는 데 주력하였고, 같은 해 4월 1일에 정식으로 개교를 선언하였다.[3] 이는 국가 차원의 문헌 수집과 보존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배출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4]

교육 과정은 도서관 현장의 실무와 이론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학칙에 따라 수업 연한은 1년으로 정해졌으며, 본과와 위탁생을 대상으로 하는 별과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3] 학생 정원은 1학급당 30명으로 제한되었고, 입학 자격은 30세 미만의 남녀로서 고급중학교, 사범학교, 여자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춘 자로 엄격히 규정되었다.[3]

교수진은 국립도서관의 주요 인사를 비롯하여 각 대학교의 교수들이 직접 출강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다.[3] 특히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입학금과 수업료를 면제하였으며, 우수한 학생에게는 급비생 제도를 적용하였다.[3] 급비생으로 선발된 인원은 졸업 후 2년 동안 도서관이나 관련 문화 기관에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조건을 두어 전문 인력의 현장 배치를 보장하였다.[3]

3. 교육 목표와 학문적 성격

국립조선도서관학교는 도서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정리, 그리고 효율적인 조직 및 운용을 위한 실무 기술 교육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는 당시 도서관학의 근간을 이루던 문헌 정보 관리 체계를 구축하여, 국가의 지식 자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9] 교육 과정은 단순한 도서 관리를 넘어, 국가 중앙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서를 양성하는 데 집중하였다.

학문적 성격 측면에서 본교는 도서관 운영의 원리와 실무를 결합한 교육 체계를 지향하였다. 특히 이재욱박봉석을 비롯한 당시의 도서관 전문가들은 도서관학의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현장 중심의 기술을 전수하고자 하였다.[3] 이는 17세기 가브리엘 노데가 정립한 도서관 사상과 운영 원리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적용하려는 시도였으며, 근대적인 정보 관리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본교는 급비생제도를 도입하여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이들이 졸업 후 도서관이나 관련 문화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교육 목표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운용할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데 있었다. 결과적으로 본교는 한국 근대 도서관학의 기틀을 다지고, 문헌 정보의 체계적 관리라는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4. 국립중앙도서관과의 연계성

국립조선도서관학교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조직 내 부설 기관으로서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해당 학교는 도서관 운영의 핵심인 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산실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의 지식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도서관의 설립 목적을 공유하였다.[3] 이러한 구조적 연계는 이론 교육과 실무 현장을 일치시키는 교육 모델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본 기관은 국가의 모든 문헌을 수집, 정리, 보존하고 이를 국민에게 열람시켜 사회 교육에 이바지한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의 고유 기능을 뒷받침하였다.[4] 특히 학교의 교수진은 국립도서관장과 부관장을 비롯한 실무 책임자들로 구성되어, 현장에서 요구되는 실질적인 기술을 학생들에게 전수하였다. 이는 교육 과정이 단순한 학문 탐구를 넘어 실제 도서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급비생 제도를 통해 선발된 인원들은 졸업 후 2년 동안 도서관이나 관련 문화기관에서 근무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이는 교육 기관에서 양성된 인재가 곧바로 국가 도서관 체계의 일원으로 편입되어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밀접한 협력 체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인력 운용 방식은 광복 직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국가적 차원의 지식 관리 체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5. 한국 도서관학 교육의 역사적 위상

국립조선도서관학교는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도서관이 수행하던 식민지적 자료 수집 체제에서 벗어나, 광복 이후 현대적이고 민주적인 도서관 운영 체제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국립중앙도서관은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족의 지적 자산을 주체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사서 양성 기관을 설립하였다. 이는 단순한 시설의 인수를 넘어, 한국의 도서관학이 국가적 차원의 학문적 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3]

당시 교육 과정은 도서 자료의 수집과 조직을 넘어, 국가의 문화적 역량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실무 기술을 체계화하는 데 집중하였다. 특히 1900년부터 1945년 사이 발행된 913종의 정기간행물 등 식민지 시대의 1차 사료를 정리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서들은 한국학 연구의 핵심적인 자료 보존 주체로 성장하였다.[2]

이러한 교육 체계는 이후 도서관학이 정보의 수집 및 운용을 다루는 학문에서 이용자와 정보의 상호 관계를 탐구하는 현대적 정보학으로 확장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17세기 가브리엘 노데가 정립한 도서관 운영 원리와 칼리마쿠스피나케스로 대표되는 고전적 목록법을 한국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 시기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졌다.[9] 비록 전쟁으로 인해 폐교의 과정을 겪었으나, 이 학교가 구축한 사서 양성 모델과 학문적 방법론은 오늘날 한국 도서관학 교육의 역사적 정통성을 잇는 중요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6. 관련 자료 및 연구 현황

식민지 시대부터 광복 이후에 이르는 한국학 자료는 근대 도서관의 기록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사료로 평가받는다. 2022년 7월 20일 공개된 동아시아 정기간행물 서지 프로젝트는 1900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된 913종의 정기간행물을 집대성하였다.[2] 해당 자료는 정치, 경제, 산업, 사회, 문학, 교육, 종교, 여성, 아동, 의학등전 분야를 망라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일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기록물은 도서관학 교육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고 당시의 지식 생산 체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국내외 주요 대학 도서관과 연구 기관은 한국학 관련 사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고지도와 같은 고문헌을 관리하며,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은 불교 문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학술적 접근성을 높였다.[5] 또한 전북대학교 박물관은 전라권 지역의 고문서와 필사본을 소장하여 지역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들 기관은 각기 전문 분야에 특화된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한국 근대 기록물의 파편화된 정보를 통합적으로 복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털 아카이빙 기술의 발전은 근대 도서관 기록의 보존과 공유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방대한 사료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며, 한국어와 영어 인터페이스를 지원하여 국제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였다.[6] 이러한 디지털화 노력은 물리적 자료의 훼손을 방지하는 동시에 전 세계 연구자들이 한국학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과거 도서관이 수행했던 자료 수집의 원칙과 실무 기술을 재조명하고 있다.

7. 같이 보기

[2] Cceas.uchicago.edu(새 탭에서 열림)

[3]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4]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5] Kkostma.aks.ac.kr(새 탭에서 열림)

[6] Llibguides.bc.edu(새 탭에서 열림)

[9] Llis.cnu.ac.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