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1860년(철종 11) 4월에 최제우가 창도한 종교이다.[1] 동학이라는 이름은 서교(천주교)의 도래에 대응하여 동쪽 나라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은 것으로, 1905년에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되었다.[1]

1. 개요

동학의 교지는 시천주 신앙에 기초하며, 보국안민광제창생을 내세운 민족적·사회적 종교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1]

2. 교리와 사상적 특징

동학의 창도 당시 신앙은 한울에 대한 공경인 경천과 시천주 신앙을 중심으로, 모든 사람이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시는 입신을 통해 군자가 되고 나아가 나라를 구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1] 제2대 교주 최시형 시기에 이르러서는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한다'는 사인여천의 가르침으로 발전했고,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에 한울이 내재한다는 물물천 사사천의 관점으로 확장되었다.[1]

이러한 사상은 개인의 내면적 구제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졌으며, 동학이 정치운동의 성격을 함께 띠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2]

3.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접주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이 전개되었다.[2] 이 운동은 교조 최제우신원운동을 통해 정치운동으로 성장한 뒤 민란과 결합해 확산되었다.[2]

동학은 농민의 요구를 횡적으로 연결한 조직적 매개체이자, 국가의 보위와 농민구제활동을 철저화하려는 정치운동의 성격을 함께 지닌 운동으로 평가된다.[2] 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해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불공정한 행정 운영을 바로잡으려 했다.[2][3]

4. 역사적 의의와 기록물

동학은 지배층의 부패외세침략에 저항하며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 민족적·사회적 운동이었다.[2][3] 동학농민운동 관련 기록물은 총 185점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학군이 구축한 협동적 통치 단위와 당시의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3]

이 기록물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Memory of the World와 관련된 자료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기억을 증언한다.[3]

동학은 종교적 결사로 출발했지만 곧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후 한국 근대사에서 종교와 사회운동이 만나는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2][3]

5. 같이 보기

다음 문서들은 동학의 사상과 운동사를 함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2]

  • 동학농민혁명
  • 최제우
  • 전봉준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6. 관련 문서

7. 인용 및 각주

[1]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2]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3] Wwww.unesco.org(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