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은 태음력에서 평년의 열두 달에 한 달을 더한 달이다.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는 음력은 한 해가 양력보다 약 11일 짧아, 시간이 지나면 음력 날짜와 계절이 어긋난다. 이 차이를 조정하려고 넣는 윤달은 공달·덤달·여벌달이라고도 불렸다.[1][3][4]

1. 개요

윤달을 두면 음력의 날짜와 계절이 크게 어긋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윤달이 든 해에는 음력 열세 달이 들어가며, 윤달은 특정한 한 달에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달이든 될 수 있다.[2][5][6]

한국의 민속에서 윤달은 부정이나 액이 끼지 않는 달로 여겨졌다. 이런 믿음에 따라 집수리나 이사, 묘 이장처럼 평소에는 조심스럽게 여긴 일을 윤달에 하기도 했고, 수의를 마련하거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풍속도 전해진다.[1][3][4]

2. 발생 원리와 삽입 주기

음력의 한 달은 달이 차고 기우는 삭망월을 바탕으로 하며, 그 주기는 약 29.53일이다. 음력에서는 29일과 30일인 달을 두어 한 달의 날짜를 정하고, 열두 달을 합친 한 해는 약 354일이 된다. 태양력의 한 해보다 약 11일 짧은 셈이다.[2][3][6]

이 차이가 해마다 쌓이면 음력 날짜와 계절이 점차 어긋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윤달을 넣으며, 대표적인 방식은 19태양년 동안 윤달 7개월을 두는 19년 7윤법이다.[3][4]

윤달을 배치할 때는 24절기도 고려한다. 달의 주기에 맞춰 날짜를 세면서 계절의 흐름도 반영하려는 방식으로, 윤달은 음력의 날짜와 태양의 계절 변화를 조정하는 역법의 일부다.[2][5][6]

3. 윤달에 대한 민속 인식

윤달은 해당 달을 다스리는 귀신이 없는 달이라는 믿음과 연결되어, 부정이나 액이 끼지 않는 시기로 여겨졌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윤달을 “송장을 거꾸로 세워 놓아도 아무 탈이 없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무탈한 달로 여기는 인식을 기록한다.[1][3]

이런 믿음에 따라 결혼, 집수리, 이사, 묘 이장처럼 평소에는 날짜나 방위를 살펴 조심스럽게 하던 일을 윤달에 하기도 했다. 수의를 만들거나 관을 준비하는 일도 윤달에 길하다고 여겨져, 미리 마련해 둔 수의를 꺼내 손질한 뒤 다시 보관하는 사례가 전해진다.[1][3][4]

4. 불공과 지역 세시풍속

『동국세시기』에는 윤달이면 서울 장안의 여인들이 봉은사에 찾아와 불공을 드리고 탑 위에 돈을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윤달에 절을 찾아 공양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서울 밖의 절에서도 비슷한 풍속이 있었다고 전한다.[1][3]

전북 고창에서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성을 도는 성돌이를 하며 극락왕생이나 액막이를 기원했다. 지역에 따라 절에서 예수재를 올리거나 장승제를 지냈고, 정월이나 2월에 윤달이 들면 장을 담그거나 팥죽을 쑤어 나누기도 했다.[1][3]

5. 지역별 장례와 제례 관습

전남에서는 수의를 먼 길을 떠날 때 입는 옷이라는 뜻에서 ‘머능옷’, 죽을 때 입는 옷이라는 뜻에서 ‘죽으매옷’이라고 불렀다. 경북 안동에서는 수의를 ‘머농’이라 했으며, 윤달에 명주나 삼베로 수의를 짓거나 수의 옷감을 마련하는 풍속이 있었다.[1]

전북 진안에서는 노인이 있는 집에서 윤달에 수의를 짓고 관을 마련해 넣어 두기도 했다. 미리 수의를 준비한 집에서는 윤달이 오면 꺼내 손질한 뒤 다시 보관했다고 전한다.[1]

제주도에서는 윤달에 사망한 사람의 제사를 윤달과 그에 해당하는 원래 달에 모두 지내는 사례가 전해진다. 이 관습에 따르면 한 해에 같은 사람의 제사를 두 번 지내기도 했다.[4]

6. 관련 문서

  • 태음력
  • 태양력
  • 24절기
  • 19년 7윤법

7. 인용 및 각주

[1] Ffolkency.nfm.go.kr(새 탭에서 열림)

[2]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3] Wwww.khs.go.kr(새 탭에서 열림)

[4]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5] Wwww.sciencetimes.co.kr(새 탭에서 열림)

[6] Wwww.ytn.co.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