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조선 왕실의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유교 사당이다. 선조의 신주를 봉안하는 사당과 무덤은 서로 다른 역할을 했으며, 종묘는 왕실 조상을 기리는 의례의 중심 공간이었다.[1][2]
1. 개요
2. 조선 왕실 사당의 제도와 건립
조선은 제후국의 제도에 따라 태조와 현왕의 4대 조상을 모시는 오묘제를 채택했다. 종묘 정전은 한 건물 안에 여러 실을 두어 신위를 각각 모시는 구조였고, 서쪽 끝에 가장 높은 신주를 두는 서상제를 따랐다.[1][5]
정종의 신주를 봉안하면 오묘의 수를 넘게 되는 문제가 생기자, 태조의 추존 4대조 신주를 별묘에 모시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1421년 세종 때 세운 영녕전이 그 별묘였으며, 이후 정전에서 옮긴 신주를 봉안하는 공간이 되었다.[1][2]
신주를 계속 정전에 모시는 세실과 일정한 세대가 지나면 영녕전으로 옮기는 조천 제도에 따라 두 건물은 여러 차례 증축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종묘가 소실된 뒤 1608년에 중건했고, 이후에도 증축을 거쳐 1836년까지 현재와 같은 규모를 갖추었다.[1][3][5]
3. 정전과 영녕전의 공간 구성
4. 건축 양식과 문화유산 가치
종묘 건축은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고 화려한 단청을 두지 않았다. 최소한의 색을 사용한 간결한 모습은 조상신을 모시는 엄숙하고 경건한 공간이라는 성격과 연결된다.[2][3]
정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08년에 다시 지어졌고, 이후 증축을 거쳐 현재 19칸 규모가 되었다. 영녕전도 전란 뒤 중건하고 증축해 현재 16칸 규모를 이루었다.[1][3]
종묘는 왕실 제례 공간의 독특한 배치와 건축 양식, 의례 전통이 보존된 사례로 평가되어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건축물과 함께 제례, 음악, 무용이 이어져 온 점도 그 문화유산 가치의 일부다.[3][4][6]
5.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종묘제례는 왕실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로, 조선 시대 국가 제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중요한 의례였다. 조선 시대에는 국왕과 세자, 문무백관, 종친 등이 참여했으며, 종묘와 영녕전에서 거행하는 제례는 국가 제사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사에 속했다.[1][2]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에서 시작해 초헌례·아헌례·종헌례와 음복례를 거친 뒤, 신을 보내는 송신례로 이어진다. 종묘제례악은 제례 절차에 맞춰 연주하는 음악과 노래, 무용을 아우르며, 제례와 함께 의례의 흐름을 이룬다.[2][3]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관리되고 있다. 종묘제례는 현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된다.[1][2]
6. 관련 문서
- 종묘 정전
- 영녕전
- 종묘제례
- 종묘제례악
- 사직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