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은 닷새를 주기로 정해진 장터에서 열리는 정기시장이다. 여러 판매자와 구매자가 일정한 날짜와 장소에 모여 물품을 거래하며, 18세기 이후 우리나라 정기시장 체계는 오일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3][7]

1. 개요

장날은 물건을 사고파는 날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이 만나 소식과 정보를 나누는 날이었다. 시장은 농촌의 경제생활과 사회문화 활동이 만나는 공간으로 기능했고,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은 주민들의 생활 리듬에도 자리 잡았다.[3][7]

오늘날에도 5일장은 농촌이나 읍·면 지역에 상품을 공급하는 통로로 남아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지역의 문화관광자원으로도 새롭게 인식되었다.[3]

2. 형성과 전국적 확산

우리나라 정기시장의 초기 기록은 15세기 후반 전라도의 ‘장문’에서 확인된다. 1472년 기록에는 주민들이 한 달에 두 번 모여 물건을 바꾸었다고 나오며, 이 장문은 보름 주기로 열리는 시장이었다.[3]

조선 후기에는 인구와 농업 생산력이 늘고 상업·수공업과 화폐경제가 발달했으며, 도로망도 정비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정기시장의 수가 늘고 장이 열리는 주기는 짧아져 전국으로 확산했다.[3][7]

1770년 기록에는 전국 장시 1,062곳 가운데 968곳이 오일장이었다. 1830년경 기록에서도 1,052곳 가운데 905곳이 오일장으로 집계되어, 18세기 이후 오일장이 정기시장의 주된 형태였음을 보여준다.[3][7]

3. 장날과 시장권의 운영

여러 장시가 서로 다른 날짜에 열리면, 한 지역에서 장날이 이어져 거래가 끊이지 않는 시장권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시장권은 대체로 네댓 개 장시가 날짜를 달리하며 열려 지역 안팎의 상품 교역을 이어 주는 범위였다.[2]

시장권은 장시의 신설·이전·폐지와 장날 변경, 상인들의 활동 범위 확대에 따라 변했다. 소규모 장시가 큰 장시에 흡수되기도 했으며, 지역 간 연계가 긴밀해지면서 중소 읍에 새로운 장시가 늘어나기도 했다.[2]

교통 요충지와 포구, 물산이 모이는 곳에서는 큰 장시가 발달하거나 상설시장으로 바뀌었다. 물산 집산지에 설치된 상설 점포인 포자는 지역 장시와 연결되어 상설화를 촉진했고, 이 과정에서 상업과 수공업 중심지도 성장했다.[2]

4. 상품 유통과 지역 경제

농민 가운데 장에 내다 팔 목적으로 인삼·면포·마포·담배 등을 마련하거나, 도시 근교에서 파·마늘·오이·생강·배추·무 등 수익성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이 늘었다. 장시에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농수산물과 가공식품이 주로 거래되었으며, 내륙 평야지대에서는 곡물과 채소, 해안지대에서는 수산물, 산간지대에서는 과일과 나물류가 특산품으로 판매되었다.[1][7]

장시는 가까운 지역의 물품뿐 아니라 먼 지역에서 온 물품도 유통·집하하는 거점이었다. 예를 들어 제주에서 생산된 미역이 전라도에서 거래되기도 했으며, 장시와 포구를 잇는 물산의 이동은 지역 간 교류를 뒷받침했다.[2]

장시가 발달하고 상품 유통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교통로가 개발되었고, 주요 길목에는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점막이나 주막이 들어섰다. 물산이 모이는 장시는 상업·수공업 중심지의 성장과도 연결되었다.[1][2]

5. 사회문화적 기능

장터는 거래뿐 아니라 소식과 정보를 주고받고, 홍보와 사교 활동을 하는 공간이었다. 주민들은 장날에 친지와 만나 음식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고, 물가와 시장 정보를 얻거나 관공서와 공공서비스 시설에서 볼일을 처리하기도 했다.[1]

장날에는 투전과 골패 같은 놀이가 벌어졌고, 놀이패와 연예흥행단의 공연이나 가설영화 상영도 열렸다. 일부 장터에서는 민속놀이와 공연이 이어져 장날을 축제처럼 만들었으며, 이런 장터 문화는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1][3]

장터는 외부 사람과 접촉하고 지역 소식을 듣는 사회적 교류의 장이기도 했다. 여성에게는 상업 활동에 참여하고 바깥출입을 할 기회가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터를 옮겨 여성들이 만나도록 한 사례도 전해진다.[1][5]

6. 근현대의 변화와 현재

일제강점기의 시장은 1914년 「시장규칙」이 공포·시행되면서 큰 변동을 겪었다. 행정기관은 장시를 비롯한 각종 시장을 통제하고, 시장 수와 분포의 적정성, 개시일 횟수와 날짜를 조정했다. 광복 이후에도 1970년대까지 오일장은 농촌의 중요한 교역기구로 기능했다.[1]

교통·통신과 현대 유통시설이 발달하면서 전통시장 이용과 정기시장 수는 감소했다. 다만 집계 수치는 조사 범위에 따라 다르다. 한 조사에서는 무등록시장까지 포함해 2006년 정기시장을 455곳으로 집계했으며, 다른 자료는 같은 해 전국 정기시장 522곳을 기록했다. 2015년부터 무등록시장을 제외한 조사에서는 정기시장이 437곳에서 2020년 387곳으로 감소했다.[4][7]

1980년대 중반 이후 오일장은 전통문화와 지역 관광자원으로 재인식되었다. 온라인 유통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렇다 할 유통시설이 없는 농촌과 읍·면 지역에서는 필요한 상품을 공급하는 통로로 기능한다.[3]

7. 관련 문서

  • 정기시장
  • 장시
  • 시장권
  • 장돌뱅이
  • 부보상

8. 인용 및 각주

[1] Ffolkency.nfm.go.kr(새 탭에서 열림)

[2]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3] Ffolkency.nfm.go.kr(새 탭에서 열림)

[4] Ffolkency.nfm.go.kr(새 탭에서 열림)

[5] Wwww.khs.go.kr(새 탭에서 열림)

[7]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