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 1797년 4월 15일 – 1877년 9월 3일)는 프랑스의 역사가·언론인·정치인으로,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7월 왕정 시기에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으며, 1870–71년 보불전쟁 이후 파리코뮌을 무력 진압하고 로마 제국 붕괴 후 유럽 역사의 분수령이 된 유럽 근대 공화국 체제의 선구자로서 프랑스 제3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1]

1. 생애 초기와 역사가로서의 활동

티에르는 1797년 마르세유(Marseille)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법보다는 역사와 언론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1821년 파리로 상경하여 자유주의 언론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입헌 군주제를 지지하는 논설을 발표했다.[1]

역사가로서 티에르는 1823년부터 1827년까지 총 10권으로 출간된 『프랑스 혁명사(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로 학문적 명성을 얻었다. 이어 나폴레옹의 집권과 제국을 다룬 『집정정부와 제국의 역사(Histoire du Consulat et de l'Empire)』를 1845년부터 1862년까지 20권에 걸쳐 저술했다. 이 두 저작은 티에르를 당대 프랑스 최고의 역사 저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2]

2. 7월 왕정 시기의 정치 활동

1830년 7월 혁명 당시 티에르는 샤를 10세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언론인으로 혁명을 지지했다.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의 7월 왕정 하에서 빠르게 정계에 진출하여 1832년 내무부 장관, 1833년 공공사업부 장관, 1834년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836년과 1840년 두 차례 총리(Président du Conseil)직을 맡았으나, 두 번 모두 루이 필리프 국왕과의 외교 정책 갈등으로 사임했다.[1]

1840년 총리 재임 중 티에르는 강경한 대외 정책을 추진하다가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 열강의 반발을 초래했고, 결국 루이 필리프에 의해 해임되었다. 이후 의회에서 강력한 야당 지도자로 활동하며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2]

3.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진압

1870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히자 제2제정이 붕괴되었다. 1871년 2월 총선에서 국민의회가 구성되었고, 티에르는 행정수반(chef du pouvoir exécutif)으로 선출되어 프로이센과의 굴욕적인 강화 조약인 프랑크푸르트 조약(Treaty of Frankfurt) 체결을 담당했다. 이 조약으로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 할양하고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3]

1871년 3월 파리 시민들은 티에르 정부의 무장해제 시도에 저항하여 파리코뮌(Paris Commune)을 수립했다. 티에르는 베르사유로 정부를 옮기고 정규군을 재편성하여, 1871년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피의 주간(Semaine sanglante)'으로 불리는 대규모 진압 작전을 단행했다. 이 진압으로 코뮌 측 사망자는 1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후 약 5만 명이 체포되어 처형·유배 또는 중형을 선고받았다.[3]

4. 제3공화국 초대 대통령

파리코뮌 진압 후 1871년 8월 티에르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 정식 선출되었다. 임기 중 그는 독일에 대한 전쟁 배상금을 예상보다 빠르게 완납(1873년)하여 점령 독일군을 조기 철수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공화주의적 입헌 체제를 공고히 하려 했으나, 왕당파가 다수를 차지한 국민의회와 끊임없이 충돌했다.[4]

1873년 5월 왕당파가 제출한 불신임안이 363표 대 348표로 가결되어 티에르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이후에도 의원으로 활동하며 공화주의를 지지했다. 1877년 9월 3일 생 제르맹앙레(Saint-Germain-en-Laye)에서 사망했으며,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Père Lachaise Cemetery)에 안장되었다.[4]

5. 역사적 평가

티에르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수립과 안정화에 기여한 정치가로 평가받는 동시에, 파리코뮌 진압의 책임자로서 노동운동사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로서는 나폴레옹 시대를 광범위하게 서술한 저작을 통해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의 발전에 공헌했다고 평가된다.[2]

6. 관련 문서

  • 유럽
  • 로마 제국

[1] Britannica, "Adolphe Thiers: French Statesman", W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2] Encyclopedia.com, "Marie-Joseph-Louis-Adolphe Thiers", Wwww.encyclopedia.com(새 탭에서 열림)

[3] History.com, "Paris Commune", Wwww.history.com(새 탭에서 열림)

[4] Britannica, "Third Republic of France", W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