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부족국가는 원시사회에서 중앙집권귀족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조직체이자 부족연맹체를 의미한다.[4] 이는 인류의 사회 발전 단계에서 씨족 사회를 지나 국가 단계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띤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씨족이나 포족과 같은 혈연 중심의 조직이 부족 단위로 확장되며, 점차 체계적인 통치 체계를 갖추게 된다.[4]

인류사의 발전 단계론에 따르면, 통치 조직은 성()에 기반한 사회 조직인 씨족에서 시작하여 포족, 부족, 부족연합체를 거쳐 국가로 진화한다.[4] 국가1 단계에 이르면 혈연 중심의 관계에서 벗어나 사유재산영역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토대를 바탕으로 지연 중심의 이차적 사회관계가 형성된다.[4] 그러나 국가적 특성이 나타난 이후에도 기존의 혈연성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변모된 형태로 강력하게 작용하며 사회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4]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사회 구성원의 권력 구조와 경제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부족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사회를 다스리는 지배자가 등장하며, 이들의 세력은 이전의 씨족 사회 시기보다 확대된다.[1] 특히 고조선과 같이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립된 초기 국가의 사례를 보면, 사유재산의 발생과 가부장적 관념의 확산이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음을알 수 있다.[2]

부족국가의 형태는 지역과 사회적 발전 수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부여고구려와 같은 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인 상호와 생산계급인 하호로 계층이 분화되었으며, 부족장이 왕을 보좌하거나 각 부를 다스리는 구조를 보였다.[2] 반면 옥저동예와 같이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사회는 고구려에 종속되어 조세를 납입하는 등 지역 간의 정치적 위계 차이가 존재하기도 하였다.[2]

2. 사회 발전 단계론적 관점

인류학모르간은 인류사의 통치조직이 발전하는 과정을 에 기초한 사회 조직의 변화로 설명하였다.[4] 그가 제시한 발전 단계에 따르면 사회 조직은 씨족에서 시작하여 포족부족, 그리고 부족연합체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1의 단계로 이행한다.[4] 이러한 체계는 인류가 사회적 복잡성을 높여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분류 체계로 활용된다.

국가1의 출현은 씨족사회로부터 발생하는 질적인 변화의 결과물이다. 이는 사유재산영역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요소를 성립 기반으로 삼는다.[4] 그러나 국가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해서 이전 단계의 요소인 혈연성이 즉각적으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특성이 나타난 이후에도 혈연 조직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며, 다만 그 기능과 성격이 과거 씨족 사회의 평등한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모하여 유지된다.[4]

부족사회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면 사회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등장하며, 이들의 세력은 이전의 씨족 사회 시기보다 확장된다.[1]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부족국가가 성립된다.[1]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는 만주한반도의 여러 지역에 이러한 형태의 국가들이 세워졌으며, 그중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조선이 가장 먼저 세워진 부족국가에 해당한다.[1]

3. 사회 조직의 구성 단계

모르간 모르간발전단계론에 따르면, 인류의 통치조직은 성()에 기초한 사회 조직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초기 단계인 씨족을 지나 포족 단계로 이행하며, 이후 부족부족연합체를 거쳐 최종적인 국가1 단계에 도달한다.[4]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적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조직의 규모와 성격이 변화한다.

부족 사회가 정착됨에 따라 사회를 다스리는 지배자가 등장하였으며, 이들의 세력은 이전의 씨족 사회보다 확대되었다.[1] 우리 민족의 경우 만주와 한반도 곳곳에 이러한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는데,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조선이 가장 먼저 세워진 부족 국가에 해당한다.[1]

국가1 단계로의 이행은 사유재산영역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요소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질적인 변화의 결과이다.[4] 국가는 혈연 관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지연과 같은 이차적인 사회관계에 따라 조직되는 특성을 지닌다. 다만 국가 체제가 확립된 이후에도 혈연성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과거의 평등한 관계와는 다른 성격과 기능으로 변모하여 사회 내에서 강하게 작용한다.[4]

4. 역사적 성립과 생활상

부족 사회가 안정적으로 정착함에 따라 사회를 통치하는 지배자가 등장하였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이전의 씨족 사회보다 확대되었다.[1]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부족국가가 성립되었다. 우리 민족의 경우 만주한반도의 여러 지역에 부족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그중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고조선이 가장 먼저 성립된 국가이다.[1]

부족 국가 시대의 사회 구조는 국가마다 차이를 보였다. 부여고구려는 지배 계급인 상호와 생산 계급인 하호로 계층이 구분되는 특징을 나타냈다. 특히 목축이 발달했던 부여에는 왕을 보좌하며 각자의 부족을 다스리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같은 부족장들이 존재하였다.[2] 고구려는 계루부, 순노부, 소노부, 관노부, 절노부의 다섯 체제로 편성되었으며, 각 부에는 부족장이 배치되어 있었다.[2]

사회적 발전 단계에 따라 사유 재산과 가부장제적 관념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고조선은 비교적 진보된 사회 체계를 갖추어 8조의 법금을 운용하였다.[2] 반면 옥저동예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사회였으며, 옥저는 고구려에 종속되어 각종 물자를 조세로 납부해야 하는 처지였다.[2] 옥저의 경우 가족 단위로 큰 목곽에 공동 생활을 하는 양상을 보였다.[2]

5. 정치 및 사회 구조

부족연맹체원시사회에서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정치조직체이다.[1] 이 시기의 사회는 사유재산영역이라는 새로운 물질적 기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나, 이전 단계의 특징인 혈연성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변모된 형태로 지속되었다.[2] 모르간발전단계론에 따르면, 인류의 통치조직씨족에서 포족, 부족, 부족연합체를 거쳐 국가1로 발전한다.

부여고구려의 사회는 지배 계급상호생산 계급하호로 이원화된 구조를 보였다. 부여의 경우 아래에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고 불리는 부족장들이 존재하였으며, 이들은 각자의 부족을 다스리는 동시에 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고구려계루부, 순노부, 소노부, 관노부, 절노부다섯 부로 조직되었으며, 각 에는 부족장이 배치되어 정치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고조선사유 재산가부장적 관념이 발달한 비교적 진보된 사회였으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8조의 법금을 운용하였다.[2] 반면 옥저동예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후진 사회의 형태를 띠었으며, 고구려의 지배를 받으며 조세로 다양한 물자를 납입하였다. 옥저의 사회 생활 양식 중에는 가족이 커다란 목곽에 공동으로 거주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6. 역사 교육에서의 다룸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는 시대 구분을 통해 부족국가 시기를 다룬다. 2차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는 '우리 역사의 시작과 부족 국가 시대'라는 단원을 통해 해당 시기를 서술하였다.[2] 이 과정에서 부여고구려의 사회 구조, 옥저동예의 생활상 등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3차 교육과정초등학교 국사 6 교과서에서는 '우리 민족과 역사의 시작'이라는 주제 아래 부족국가의 성립과 생활을 다루었다.[1] 특히 고조선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국가라는 점을 명시하며, 이를 민족 역사의 출발점으로 교육하였다.

교육과정 내에서 부족국가는 씨족 사회보다 확대된 지배 세력이 등장하여 형성된 단계로 정의된다. 고조선의 경우 8조법을 통해 사유 재산가부장제적 관념이 나타나는 진보된 사회였음을 강조한다.[2] 또한 부여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같은 부족장 체제나 고구려오부 체제등각 국가의 독특한 정치 구조를 통해 사회적 복잡성을 설명한다.

우리 민족과 역사의 시작 - (3) 부족 국가의 생활 - 〈부족 국가의 성립〉 - 역대 국사 교과서 - 3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국사 6(3차) - 1\.[1][2][3]

7. 같이 보기

[1]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2]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3] Wwww.korean.go.kr(새 탭에서 열림)

[4]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