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사는 조선 왕조가 건국된 이후 전 왕조인 고려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편찬한 관찬 역사서이다. 이 책은 기전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고려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사항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4] 정인지 등이 주도하여 1449년(세종 31)에 편찬을 시작하였고, 1451년(문종 원년)에 편찬을 완료하였다.[6] 이후 1454년(단종 2)에 최종적으로 간행되었다.[4]

본 서적은 총 139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가 46권, 지 39권, 연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으로 나뉘어 기록되어 있다.[4] 이러한 체계적인 구성을 통해 고려의 역사를 다각도에서 조명하며, 단순한 연대기적 기록을 넘어 제도와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백관지에는 1012년(현종 3) 절도사를 혁파한 뒤 설치된 안찰사와 같은 지방 행정 제도에 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5]

고려사는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적인 사료이다.[6] 고려의 국가 운영 체계와 사회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가 된다.[3] 이 사서는 고려 시대의 구체적인 통치 방식과 사회적 변화를 복원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이와 더불어 김종서 등이 1452년(문종 2)에 편찬한 편년체 역사서인 고려사절요 역시 고려 시대 연구를 위한 주요 자료로 활용된다.[6] 고려사가 기전체로서 인물과 제도를 중심으로 서술한다면, 고려사절요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 중심으로 기록되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료의 결합은 고려 시대라는 역사적 시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2. 편찬 과정 및 배경

조선 왕조는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건국 이전의 전 왕조인 고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관찬 사서 편찬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4] 이러한 역사 정리 작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고려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사항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을 핵심적인 목적으로 삼았다.[4]

본격적인 편찬 작업은 1449년(세종 31)에 시작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방대한 사료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단계가 진행되었다. 정인지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역사 기술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오랜 연구와 집필 과정을 거쳐 1451년(문종 1)에 편찬을 완료하였다.[6] 이후 1454년(단종 2)에 이르러 실제 책으로 인쇄하여 간행하는 물리적 공정이 마무리되었다.[4]

이러한 편찬의 결과로 고려의 역사는 세가 46권, 지 39권, 연표 2권, 열전 50권, 목록 2권등총 139권 규모의 기전체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4] 이는 고려 시대의 통치 체제와 사회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결과물로서,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핵심적인 사료로 기능한다.[6] 특히 「백관지」와 같은 기록은 1012년(현종 3) 절도사를 혁파한 뒤 설치된 안찰사 제도와 같은 과거의 구체적인 행정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5]

기록의 내용은 고려의 중앙 집권적 통제와 지방 행정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개경 이남의 5도 지역에 파견된 안찰사는 각 도의 주현을 순찰하며 수령을 감찰하고 조세를 거두는 등 지방 행정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하였다.[5] 이처럼 『고려사』는 고려 시대의 정치적 변화와 제도적 특징을 지역적, 기능적 관점에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3. 서술 체계와 구성

『고려사』는 조선 건국 이후 전 왕조인 고려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편찬된 관찬 사서이다. 이 문헌은 역사를 기록하는 전통적인 방식인 기전체 형식을 채택하여 서술되었다. 기전체 방식은 인물과 제도, 그리고 연대기적 흐름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역사를 기술하는 체계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고려 시대의 정치적 변천과 사회적 구조를 다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4]

전체적인 구성은 매우 방대하며 세부적으로 구분되어 있다. 서술의 시작점에는 고려의 기원을 다루는 고려세계가 배치되어 역사의 뿌리를 밝힌다.[7] 이후 왕실의 역사를 기록한 세가 46권, 국가의 제도와 행정 체계를 정리한 지 39권, 주요 인물들의 생애를 기술한 열전 50권, 사건의 흐름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연표 2권, 그리고 수록된 내용의 체계를 정리하는 목록 2권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모두 합하면 총 139권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4]

각 권은 특정 주제나 인물군을 중심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고려의 역사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권별로 구분된 체계적 서술 방식은 고려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4] 이러한 정교한 구성 덕분에 『고려사』는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적인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체계화된 기록 방식은 후대 역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학술적 틀을 제공한다.

4. 주요 기록 내용

『고려사』 「백관지」는 고려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지탱하던 다양한 제도와 관직 체계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기록은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행정 조직과 관료제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료로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마련된 여러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당시 사회의 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3]

지방 행정 체계와 관련하여, 1012년(현종 3) 절도사를 폐지한 이후 안찰사를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5] 안찰사는 개경 이남의 5도에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로, 안렴사, 제찰사, 도관찰출척사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이들은 각 도의 주현을 순찰하며 수령에 대한 상벌권을 행사하고, 민생 안정과 형옥 관리, 조세 징수 및 군사 업무를 수행하였다.[5] 다만 안찰사는 상시적으로 지방에 거주하지 않았으며, 별도의 전담 행정 기구를 보유하지는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궁궐 내의 학술 기관 및 백관의 품계에 관한 기록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예종 11년(1116)에는 궁궐 내에 청연각을 건립하고 학사, 직학사, 직각을 각각 1명씩 선발하여 경서를 강론하게 하였다.[8] 이때 학사는 종3품, 직학사는 종4품, 직각은 종6품의 품계를 부여받았다. 이후 학사들의 숙직과 출입 편의를 위해 청연각 옆에 별도의 건물을 세우고 명칭을 보문각으로 변경하였다.[8] 또한 대제를 추가로 설치하여 그 반차를 급사중이나 중서사인과 동일하게 맞추고 금자를 하사하는 등 학술 인력에 대한 예우를 갖추었다.

5. 사료적 가치와 특징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고려사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적인 사료이다. 이 문헌은 고려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당대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6] 특히 조선관찬 사서로서 전 왕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이 역사서는 정인지 등이 주도하여 1451년에 편찬을 완료하였다.[4] 조선의 학자들이 전 왕조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특성에 관한 학술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격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조선 초기 역사 인식사관이 투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고려사와 함께 고려사절요고려 시대 연구를 위한 양대 기초 자료로 꼽힌다. 고려사절요김종서 등이 1452년에 편찬한 편년체 형식의 역사서이다.[6] 이처럼 서로 다른 서술 체계를 가진 문헌들은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고려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6. 관련 사서와의 비교

『고려사』는 김종서 등이 1452년에 편찬을 완료한 고려사절요와 구분된다.[6] 두 문헌은 모두 고려 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사료이지만, 서술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고려사』가 인물과 제도 등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기전체 형식을 취하는 반면, 『고려사절요』는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는 편년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고려사절요』는 고려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하여 사건의 전개 과정을 파악하기에 용이한 특징을 가진다.[6] 이러한 서술 구조의 차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두 사료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한다. 기전체 사서인 『고려사』를 통해 당시의 정치 체제와 사회 구조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편년체 사서인 『고려사절요』를 통해 구체적인 사건의 발생 시점과 흐름을 확인하는 식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두 사료를 병행하여 검토함으로써 고려 시대에 대한 입체적인 재구성이 가능해진다. 『고려사』가 제공하는 제도적·인물 중심의 정보와 『고려사절요』가 제공하는 시간적 흐름의 정보는 상호 결합하여 당대의 실상을 더욱 정밀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두 문헌은 고려 시대를 규명하기 위한 핵심적인 1차 사료로서 기능한다.[3]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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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