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州)는 전통시대에 사용된 지방 행정 구역의 단위 중 하나이다. 중국 고대 문헌에서 기원한 이 명칭은 한반도에서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지방 행정 구획의 핵심 단위로 기능하였으며, 1895년 갑오개혁으로 근대적 행정 체계가 도입될 때까지 존속하였다.[1]
1. 개요
주(州)는 전통시대에 사용된 지방 행정 구역의 단위 중 하나이다. 중국 고대 문헌에서 기원한 이 명칭은 한반도에서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지방 행정 구획의 핵심 단위로 기능하였다.[1] 통일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9개의 주와 5개의 소경(小京)으로 정비하여 체계적인 지방 지배 구조를 갖추었으며,[2] 이 구조는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하였다.[1] 주는 단순한 행정 구역을 넘어 군사적 거점 기능을 겸비한 복합적 성격을 지녔으며, 1895년 갑오개혁 때 23부제가 실시될 때까지 지방 행정 구획의 상위 단위로 존속하였다.[1][4]
2. 중국에서의 기원
주라는 지방 행정 단위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중국 문헌 『통전(通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요(堯) 임금이 다스리던 당(唐) 시대에 이미 전국을 9개의 주로 나누어 다스렸다고 전해지나, 역사적 신빙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된다.[1]
주의 행정 단위로서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한나라 무제(武帝)의 개혁에서 비롯된다. 무제는 원봉(元封) 5년인 기원전 106년에 전국을 13개의 주 단위로 구획하고 각 주에 자사(刺史)를 파견하여 지방관을 감찰하게 하였다.[1][4] 자사는 각 주를 순회하며 지방관의 비리를 감시하고 중앙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이로써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지방 말단까지 미칠 수 있는 감찰 체계가 확립되었다.[5] 한나라의 이 행정 체계는 이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지방 통치 제도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받은 한반도의 각 왕조들도 주 제도를 자국의 지방 지배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4][5]
3. 신라의 주 설치와 발전
한반도에서 주라는 명칭이 처음 확인되는 시기는 신라의 탈해이사금 11년인 67년이다. 당시 신라는 전국을 주와 군으로 나누고 박씨 귀족들을 주주(州主)와 군주(郡主)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1] 다만 이 시기 주의 구체적인 성격과 범위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였다.[6]
보다 체계적인 주의 설치는 505년(지증왕 6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부터 군사적 성격이 강화된 주가 설치되기 시작하였으며, 강원도 삼척 지역에 실직주(悉直州)가 설치되고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로 임명되었다.[1] 실직주에는 실직정(悉直停)이라는 군단이 배치되어 군사 거점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신라는 이 군사적 성격의 주를 활용하여 영토를 점차 확장해 나갔다.[6] 이후 신라의 영토 확장과 함께 사벌주(沙伐州,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감문주(甘文州,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 완산주(完山州,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 대야주(大耶州,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등이 차례로 설치되었다.[1][6]
4. 통일신라의 9주 체계
삼국통일 이후 신라는 전면적인 군현제 개편의 일환으로 전국을 9개의 주로 정비하는 대대적인 행정 개편을 단행하였다. 옛 고구려 영역에는 한산주(漢山州, 후에 漢州), 수약주(首若州, 후에 朔州), 하서주(河西州, 후에 溟州)를 설치하였고, 옛 백제 지역에는 웅천주(熊川州, 후에 熊州), 완산주(完山州, 전주), 무진주(武珍州, 후에 武州)를 두었다. 신라 본토 지역에는 삽량주(歃良州, 후에 良州), 청주(菁州, 후에 康州), 사벌주(沙伐州, 상주)를 설치하여 9주 체계를 완성하였다.[1][2]
이 시기의 주는 군사적 성격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 많은 군과 현을 거느림으로써 명실상부한 지방 행정 구역의 상위 단위로 정착하였다.[1]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9주 관할의 군·현 수는 소경(小京) 5, 군 120, 현 300으로 총 425개에 달하였다.[2] 각 주의 장관은 처음에 총관(摠管)이라 하였다가 이후 도독(都督)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며,[2] 각 군과 현에도 행정관이 파견되어 정기적인 감찰을 받았다.[2]
5. 고려시대의 주 운영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을 거치면서 주 제도는 상당한 변질을 겪었다. 후삼국 시기에 궁예(弓裔)와 왕건(王建)은 스스로 복속하거나 협조한 지방 세력의 출신지를 주로 승격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1] 이로 인해 고려 태조 대에만 50개가 넘는 주가 존재하였으며, 군·현 단위의 소규모 읍이 명칭상으로만 주로 승격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3]
성종 대에 이르러 이러한 혼란을 개혁하기 위해 주·현 2급제가 시도되었으나 실패하였다.[1] 고려의 지방 행정에서는 중앙 정부의 직접 통제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 전체의 약 60%에 달하는 등 반독립적인 지역 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였으며,[3] 결과적으로 고려시대에는 대규모의 주와 소규모의 주가 혼재하는 이원적 구조가 지속되었다.[1][3]
6. 조선시대의 개편과 소멸
1413년(태종 13년)에 조선은 소규모 주의 '주(州)' 자를 '산(山)' 또는 '천(川)' 자로 바꾸고 다시 군·현의 명칭을 부여하는 개편을 단행하였다.[1] 예를 들면 괴주(槐州)는 괴산군(槐山郡)으로, 곡주(谷州)는 곡산군(谷山郡)으로, 제주(堤州)는 제천현(堤川縣)으로 각각 개명되었다.[1] 이와 함께 이들 지역에는 군수(郡守)와 현령(縣令) 등 외관(外官)이 새로 파견되어 지방 통치가 재편되었으며, 조선은 이를 통해 고려시대의 혼란스러운 지방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자 하였다.[3]
반면 대규모의 주는 그 명칭을 존속시키고 목사(牧使)나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 같은 관원을 파견하여 유지되었다.[1] 그러나 이 대규모 주들도 1895년 갑오개혁기의 23부제(府制) 실시와 광무개혁기의 13도제(道制) 실시로 행정 구획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1] 이로써 신라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던 지방 행정 구획의 상위 단위로서의 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3]
8. 인용 및 각주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州)", 한국학중앙연구원, 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2] Mark Cartwright, "Unified Silla Kingdom", World History Encyclopedia, www.worldhistory.org(새 탭에서 열림)
[3] Mark Cartwright, "Goryeo", World History Encyclopedia, www.worldhistory.org(새 탭에서 열림)
[4] Encyclopedia Britannica, "Han dynasty", 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5] Joshua J. Mark, "Han Dynasty", World History Encyclopedia, www.worldhistory.org(새 탭에서 열림)
[6] Mark Cartwright, "Silla", World History Encyclopedia, www.worldhistory.org(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