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종(固有種, endemic species)이란 지리적으로 한정된 특정 지역에서만 자연적으로 생육하거나 서식하는 생물 분류군을 가리킨다. 어떤 종이 지구상에서 단 하나의 섬, 산맥, 호수, 국가 또는 그 이하의 특정 구역에만 존재할 때 그 종을 해당 지역의 고유종이라고 부른다. 고유종은 삼림 벌채나 서식지 파괴와 같은 환경 교란이 발생할 경우 개체군 전체가 지구상에서 영구 소멸할 위험에 처한다는 점에서, 그 지역 생물다양성의 핵심 지표이자 보전 우선순위 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1]
고유종은 자생종(native species)과 구별해야 한다. 자생종이란 어떤 지역에서 인위적 도입 없이 자연적으로 분포하는 모든 종을 뜻하는 반면, 고유종은 그 가운데서도 오로지 특정 지역에만 분포가 국한된 종이다. 따라서 모든 고유종은 자생종이지만, 모든 자생종이 고유종은 아니다.[2]
1. 형성 원인과 생물지리학적 배경
고유종이 만들어지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지리적 격리: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섬, 주변 지역과 단절된 산 정상부, 육지에 고립된 호수처럼 지형적·지리적 장벽이 존재하면 그 안의 개체군은 외부 유전자 흐름이 차단된 채 독자적인 진화 경로를 밟는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형태, 생태, 행동이 달라져 새로운 종으로 분화한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조류인 다윈 핀치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 핀치들은 약 200만 년 전 남아메리카 본토에서 날아온 단일 조상 개체군으로부터 먹이 자원에 따라 부리 형태가 분화한 13종 이상의 고유종 집단을 형성했다.[3]
기후 피난처: 빙하기 같은 급격한 기후 변동 시기에 특정 지역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유지했을 때, 그 지역은 다른 곳에서 멸종한 생물의 마지막 피난처가 된다. 기후가 다시 바뀌어도 그 종은 좁은 피난처 안에만 남아 고유종으로 존속한다. 이 메커니즘을 '기후 피난처 가설'이라 부르며, 고유성 집중 지점이 안정적 기후 피난처와 공간적으로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어 있다.[4]
다배수체화와 잡종 분화: 식물에서는 배수체화(polyploidy)나 종간 교잡에 의해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생겨난 종은 초기에 개체 수가 극히 적고 분포 범위가 좁아, 형성 직후부터 고유종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2. 고유종의 유형
생물지리학에서는 고유종의 형성 이력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을 구분한다.
2.1 고생고유종 (paleoendemic species)
고생고유종은 과거에 광범위하게 분포했지만 환경 변화 또는 경쟁 등의 이유로 분포 범위가 좁아져 특정 지역에만 남겨진 종이다. '잔재종(relict species)'이라고도 불린다. 중국에서만 자라는 은행나무(Ginkgo biloba)가 전형적 예로, 화석 기록에는 전 세계에 넓게 분포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북아메리카 서해안에 자생하는 코스트 레드우드(Sequoia sempervirens) 역시 속 내에 단 하나만 살아남은 고생고유종이다.[5]
3. 주요 지역별 고유종 사례
3.1 갈라파고스 제도
적도 동태평양에 위치한 갈라파고스 제도는 단위 면적 대비 고유종 밀도가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섬의 역사가 비교적 짧고(최대 약 400만 년), 본토와 격리된 환경이어서 수많은 신생고유종이 형성되었다. 바다이구아나(Amblyrhynchus cristatus)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해양 환경에 적응한 이구아나로, 갈라파고스 제도에만 서식한다. 갈라파고스 자이언트 거북은 한때 25만 마리에 달했으나 현재는 약 1만 5천 마리만 남아 있다.[7]
3.2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는 약 8,800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분리된 뒤 독자적인 생물 진화가 이루어진 생물다양성 핫스팟이다. 육상 포유류의 약 92%, 파충류의 95%, 양서류의 거의 전부가 고유종이며, 식물 종의 약 89%가 이 섬에만 분포한다.[8] 그러나 원래 산림의 약 80%가 이미 사라져 107종의 심각한 멸종위기종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3.3 [[amazon-river|아마존강]] 유역과 [[cerrado|세하두(Cerrado)]]
아마존 유역은 지구 육상 생물다양성의 10%가량을 품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이 유역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브라질의 사바나 생태계인 세하두는 독자적인 식물 고유종 비율이 높아 글로벌 생물다양성 핫스팟으로 지정되어 있다.
4. 한국의 고유종
대한민국 국립생물자원관(NIBR)은 한국 고유종을 "대한민국 영내에서만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모든 생물 분류군"으로 정의하며, 남북한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종도 한반도 고유종에 포함한다. 2025년 12월 기준으로 한국의 고유종은 총 2,370종으로 집계되어 있다.[9]
분류군별로는 곤충이 1,132종으로 가장 많고, 기타 무척추동물 604종, 관속식물·선태식물 411종, 균류·지의류 100종, 척추동물 82종, 조류(藻類) 35종, 원생동물 6종 순이다.
한국의 대표적 고유종으로는 식물 분야에서 미선나무(Abeliophyllum distichum, 충청북도 일대 석회암 지대 자생), 금강제비꽃(Viola diamantiaca) 등이 있으며, 동물 분야에서는 장수하늘소(Callipogon relictus)와 한국산 고유 어류인 꺽지(Coreoperca herzi) 등이 포함된다. 고유종은 분포 범위가 국한되어 있어 개체군 크기가 작고, 외래종과의 경쟁 및 유전적 교란에 취약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보전 관리가 요구된다.
5. 생물다양성 핫스팟과의 관계
생물다양성 핫스팟(biodiversity hotspot)이란 관속식물 고유종이 1,500종 이상이면서 원래 자연 식생의 70% 이상이 이미 훼손된 지역을 가리킨다. 2026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36개의 핫스팟이 지정되어 있으며, 이 지역들은 지구 육지 면적의 약 17.3%에 불과하지만 전체 고유 식물 종의 약 77%, 그리고 전체 고유 육상 척추동물의 상당 비율을 포함한다.[10] 고유종이 밀집한 핫스팟은 한정된 보전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 결정할 때 국제 자연보전연맹(IUCN)과 민간 보전 기관이 가장 먼저 참조하는 공간 기준이다.
6. 보전 전략
6.1 현지 내 보전 (in situ conservation)
고유종 보전의 기본 원칙은 자연 서식지 안에서의 현지 내 보전이다. 국립공원 지정, 보호구역 확대, 서식지 복원, 외래종 제거가 핵심 수단으로 쓰인다. 그러나 기후 변화, 농경지 확산, 삼림 벌채 등의 압박이 지속되면 현지 내 보전만으로는 장기적 생존을 보장하기 어렵다.
6.2 현지 외 보전 (ex situ conservation)
씨앗 은행(seed bank), 조직 배양, 동물원 번식 프로그램, 극저온 보존(-196°C 액체질소)이 대표적인 현지 외 보전 수단이다. 극저온 보존은 이론적으로 무한한 장기 보관을 가능하게 하여, 현지 개체군이 소멸하더라도 유전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11]
6.3 법적·제도적 보호
많은 국가가 고유종을 멸종위기종 목록에 우선 포함시키고 포획·채취·수출 규제를 적용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II급을 지정하며, 고유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국제적으로는 생물다양성협약(CBD)과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가 고유종 보호를 위한 다자 체계를 구성한다.
7. 위협 요인
고유종이 비고유종(광역 분포종)보다 취약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소규모 개체군: 분포 범위가 좁아 유전적 다양성이 낮고, 단일 재해(화재, 태풍, 질병)로 개체군 전체가 소멸할 수 있다.
- 서식지 특이성: 특정 토양형, 고도, 수질, 공생 관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서식지 변형에 민감하다.
- 기후 변화: 기온·강수 패턴의 급격한 변화가 분포 적합 범위를 좁히거나 이동 불가능한 격리 개체군을 위협한다.
- 외래 침입종: 섬이나 고립 지역의 고유종은 포식자나 경쟁자가 없는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도입된 외래종에 특히 무방비 상태인 경우가 많다.
- 과도한 채취·수집: 희소성 때문에 상업적 가치가 높아져 불법 채취·밀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가된 식물 3만 8,630종 가운데 1만 5,774종이 위협 상태로, 고유 식물의 75%가 집중된 35개 생물다양성 핫스팟에서 위협이 특히 심각하다.[12]
9. 인용 및 각주
[1] Britannica, "Endemic species", 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2]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 고유종", species.nibr.go.kr(새 탭에서 열림)
[3] Galápagos Conservancy, "Biodiversity", www.galapagos.org(새 탭에서 열림)
[4] Harrison S. & Noss R., "Endemism hotspots are linked to stable climatic refugia", Annals of Botany 119(2): 207–214 (2017), pmc.ncbi.nlm.nih.gov(새 탭에서 열림)
[5] Britannica, "Endemic species — Paleoendemic species", 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6] Britannica, "Endemic species — Neoendemic species", 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7] Galápagos Conservancy, "Biodiversity: Giant Tortoises", www.galapagos.org(새 탭에서 열림)
[8] IUCN Red List, "Madagascar — Endemic Species Overview", www.iucnredlist.org(새 탭에서 열림)
[9]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 고유종 현황 (2025년 12월 기준)", species.nibr.go.kr(새 탭에서 열림)
[10] Stévart T. et al., "Defining endemism levels for biodiversity conservation", Biological Conservation 252 (2020), pmc.ncbi.nlm.nih.gov(새 탭에서 열림)
[11] Benelli C. & De Carlo A., "Endemic Plant Species Conservation: Biotechnological Approaches", Plants 9(4): 523 (2020), pmc.ncbi.nlm.nih.gov(새 탭에서 열림)
[12] Ibid. Benelli C. & De Carlo A., "Endemic Plant Species Conservation: Biotechnological Approaches", Plants 9(4): 523 (2020), pmc.ncbi.nlm.nih.gov(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