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는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왕 존(King John)이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해 서명한 문서로, 왕권을 법 아래 두는 원칙을 처음으로 명문화했다.[1] 원래는 귀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으나, 이후 수 세기에 걸쳐 개인의 자유와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하는 헌법 원리의 토대로 재해석됐다. 오늘날 마그나 카르타는 입헌군주제웨스트민스터 시스템 전통의 근간이자 현대 민주주의 헌정 사상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1. 역사적 배경

13세기 초 잉글랜드 왕 존은 프랑스 영토 수복 전쟁에 연거푸 실패하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귀족들의 반발을 샀다. 1215년 반란 귀족들이 런던을 점령하자 존 왕은 협상에 나섰고, 템스강 변 러니미드(Runnymede) 초원에서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했다.[1] 존 왕은 서명 직후 교황 이노센트 3세에게 무효화를 요청해 관철시켰으나, 이듬해 존 왕의 사망 이후 섭정이 어린 헨리 3세의 이름으로 재발급했다. 이후 1225년과 1297년에 개정·재확인되며 잉글랜드 법체계에 정착했다.[2]

2. 주요 조항

원문은 63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현재 잉글랜드법에 아직 살아 있는 핵심 조항은 다음과 같다.[2]

  • 제1조: 잉글랜드 교회의 자유 보장
  • 제39조(현행법 제29조): 자유민은 동등한 자들에 의한 합법적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재산 박탈·추방 또는 신체 침해를 받지 않는다.
  • 제40조: 누구에게도 권리와 정의의 실현을 팔거나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않는다.

제39·40조는 후대에 인신보호 원칙(habeas corpus)과 적법 절차(due process)의 선구로 해석됐다.[3]

3. 법적·헌법적 유산

마그나 카르타는 1628년 권리청원, 1679년 인신보호법, 1689년 권리장전으로 이어지는 영국 헌정 전통의 출발점이다. 입헌군주제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이 퍼진 국가들에서도 법적 원형으로 작동한다.[3] 미국 수정헌법 5조의 적법 절차 조항, 세계인권선언 제9·10조도 마그나 카르타의 이념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된다.[4]

17세기 에드워드 코크 경은 마그나 카르타를 의회 우위의 근거로 재해석해 왕권에 맞섰고, 명예혁명 이후 법치주의의 상징적 문서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4개의 원본이 현존하며, 그 중 두 건은 대영도서관, 나머지 둘은 솔즈베리 대성당과 링컨 대성당에 각각 보관돼 있다.[1]

4. 현대적 의의

마그나 카르타는 법치주의, 권력 분립, 개인의 자유라는 현대 헌정 사상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 법학 교육에서 필수 참고 문헌으로 다뤄진다. 2015년 서명 8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기념행사가 열렸으며, 잉글랜드의 러니미드 초원은 마그나 카르타 체결의 역사적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4]

5. 관련 문서

6. 인용 및 각주

[1] The National Archives (UK) – Magna Carta. Wwww.nationalarchives.gov.uk(새 탭에서 열림)

[2] UK Legislation – Magna Carta 1297. Wwww.legislation.gov.uk(새 탭에서 열림)

[3] Encyclopedia Britannica – Magna Carta. W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4] US National Archives – Magna Carta exhibit. Wwww.archives.gov(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