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을 뜻하며,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북동부, 터키 남동부에 걸쳐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충적 평원 지대를 가리킨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정복에 이르기까지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이 연속적으로 번성한 곳으로, 흔히 '문명의 요람'이라 불린다. 로마 제국 또한 116년에 이 지역을 속주(메소포타미아 속주)로 편입할 만큼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1. 지리적 배경과 환경

메소포타미아의 핵심 지역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남쪽의 하부 메소포타미아는 바빌로니아라 불리며 수메르 문명이 발달한 충적 저지대다. 북쪽의 상부 메소포타미아는 아시리아가 중심이 된 구릉·초원 지대로, 계절성 강우에 의존한 건조 농업이 가능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봄철 해빙기에 범람하여 비옥한 실트(퇴적토)를 평원에 쌓았다. 이 자연 관개 덕분에 기원전 6000년경부터 정주 농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강수량 자체는 연간 200mm 미만으로 매우 적어, 대규모 인공 관개망 없이는 집약 농업이 불가능했다. 관개 시설의 공동 관리와 이에 따른 노동 조직화가 도시 국가 형성의 물질적 기반이 되었다.[1]

2. 주요 문명의 흥망

2.1 수메르 (기원전 4500~2300년경)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출현한 세계 최초의 도시 문명이다. 우루크(현 이라크 와르카), 우르, 에리두, 라가시 등 여러 도시 국가가 경쟁하며 발전했다. 기원전 3200년경 등장한 쐐기문자(설형문자)는 처음에는 곡물·가축의 행정 기록용으로 발달했으나, 이후 문학·법률·종교 텍스트로 확장되었다. 수메르어로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 문학으로 평가받는다.[2]

2.2 아카드 제국과 바빌로니아 (기원전 2300~539년)

기원전 2334년 사르곤 1세가 수메르 도시 국가들을 통일해 세운 아카드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광역 제국으로 기록된다. 이후 우르 3왕조의 부흥을 거쳐 기원전 1894년 고(古)바빌로니아 왕조가 성립했다. 제6대 왕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92~1750년)는 '함무라비 법전'을 반포하여 282개 조항으로 상업 거래, 노예제, 가족법, 형사 처벌을 성문화했다. 이 법전은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현무암 석비에 보존되어 있다.

신(新)바빌로니아 왕조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재위 기원전 605~562년)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바빌론 유수'를 단행하였으며, 공중정원을 포함한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바빌론을 당대 최대 도시로 번영시켰다. 기원전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 키루스 2세에게 함락되면서 바빌로니아 시대는 막을 내렸다.

2.3 아시리아 (기원전 2500~609년)

아시리아는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아수르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신(新)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11~609년) 시기에는 이집트와 서아시아 전역에 걸친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세계 제국을 건설했다. 아수르바니팔 왕(재위 기원전 669~631년)은 니네베에 세운 대형 도서관에 수천 점의 점토판 문헌을 수집·보관했으며, 여기서 《길가메시 서사시》 완본이 발굴되었다. 기원전 612년 바빌로니아-메디아 연합군에게 니네베가 함락됨으로써 아시리아 제국은 붕괴했다.

3. 문자, 법, 종교

쐐기문자는 갈대 첨필로 젖은 점토판에 눌러 새기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수메르어, 아카드어, 엘람어, 히타이트어, 우가리트어 등 다양한 언어가 이 문자 체계를 빌려 표기했다. 19세기 영국 외교관 헨리 롤린슨이 베히스툰 비문(기원전 6세기)을 해독함으로써 쐐기문자 해독의 길이 열렸다.[3]

메소포타미아의 종교는 다신교 체계로, 하늘의 신 아누, 물과 지혜의 신 엔키, 폭풍의 신 엔릴 등이 주요 신격이었다. 각 도시 국가는 수호신을 모시는 지구라트(계단식 신전 탑)를 건설했다. 지구라트는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소로 여겨졌으며, 우르의 지구라트는 현재까지 상당 부분 보존되어 있다. 천문학과 점성술 역시 종교적 맥락에서 발전했으며, 60진법 기수법은 현재의 시간(60분, 60초)과 각도 체계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4. 고고학과 현대적 의의

19세기 중반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니네베, 니므루드, 바빌론, 우르 등의 유적을 발굴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실체가 드러났다. 우르는 1920~30년대 레너드 울리의 발굴로 왕릉과 부장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현대 이라크 영토에 대부분의 유적이 위치하기 때문에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이후의 분쟁으로 심각한 유산 훼손이 발생했다. 2015~2016년 IS(이슬람 국가)는 니므루드·하트라 등의 유적을 파괴했으며, 이라크 박물관에서 약탈된 유물 수천 점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많다.[4]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한 문자, 법전, 60진법, 도시 행정, 천문 관측의 전통은 혼합주의 종교 전통과 함께 지중해 문명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며 인류 지식의 기초를 형성했다.

[1] J. N. Postgate, Early Mesopotamia: Society and Economy at the Dawn of History (Routledge, 1992). Wwww.routledge.com(새 탭에서 열림)

[2] Andrew George (trans.), The Epic of Gilgamesh: The Babylonian Epic Poem and Other Texts in Akkadian and Sumerian (Penguin Classics, 2003). Wwww.penguin.co.uk(새 탭에서 열림)

[3] Karen Radner and Eleanor Robson (eds.), The Oxford Handbook of Cuneiform Culture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Ddoi.org(새 탭에서 열림)

[4] UNESCO, Emergency Safeguarding of the Syrian and Iraqi Heritage (2015). Wwww.unesco.org(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