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Imperium Romanum)은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으며 공화정을 실질적으로 대체한 때부터,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1453년까지 존속한 고대 지중해 세계의 패권 국가다.[2] 최전성기인 2세기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에는 서쪽의 이베리아 반도부터 동쪽의 메소포타미아까지 약 650만 km²의 영토를 지배하며 당시 세계 인구의 약 20~25%를 품었다.

1.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로마는 기원전 509년경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원로원과 집정관 두 명이 권력을 나눠 갖는 이 체제는 약 450년간 지속되며 로마를 네덜란드·잉글랜드 등 훗날 유럽 여러 지역까지 팽창시키는 토대가 됐다. 그러나 기원전 1세기에 들어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같은 강력한 군사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공화정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고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로 올라섰다. 기원전 27년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Augustus, 신성한 자)'라는 칭호를 부여했고, 이 시점을 역사학자들은 로마 제국의 시작으로 본다.[1] 아우구스투스는 공화정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군 통수권과 호민관 특권을 독점해 실질적인 황제 권력을 행사했으며, 상비군과 친위대(근위대)를 창설해 황권을 공고히 했다.

2. 전성기와 영토 확장

아우구스투스 이후 약 200년간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로 불리는 상대적 안정기였다. 이 시기 로마는 도로망, 수도교(水道橋), 공중목욕탕, 원형경기장 등 대규모 사회 기반 시설을 건설했고, 라틴어와 로마법을 속주 전체에 보급했다.

제국 최대 판도는 98~117년에 재위한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달성됐다. 그는 다키아(오늘날의 루마니아)와 메소포타미아 일부를 정복해 영토를 650만 km²까지 넓혔다.[2] 속주 출신 첫 황제였던 트라야누스는 알리멘타(alimenta)라는 빈민 아동 지원 제도를 도입해 사회 복지에도 힘썼다.

하드리아누스(117~138년)는 확장 정책 대신 방어선 강화를 택해 브리타니아(오늘날의 잉글랜드 북부)에 하드리아누스 장벽을 축조했다. '오현제(五賢帝)' 시대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년)는 《명상록》을 남긴 철학자 황제로 유명하다.

3. 위기와 분열

3세기에 들어 군인 황제들이 난립하는 혼란기가 찾아왔다. 50년 사이에 26명이 황제로 즉위하는 극도의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경제가 무너지고 역병이 퍼졌다. 284년에 즉위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광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서방과 동방을 두 황제가 분담하는 사두정치(Tetrarchy) 체제를 도입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306~337년)는 기독교를 공인한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제국의 종교 지형을 바꿨다. 기독교와 다양한 지역 신앙이 융합되는 과정은 혼합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연구된다. 그는 330년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이를 콘스탄티노플이라 이름 붙였다.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 제국은 서로마와 동로마로 완전히 분리됐다. 게르만족의 압박을 받던 서로마 제국은 476년 게르만인 장군 오도아케르에게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퇴위당하면서 멸망했다.[3]

4. 동로마 제국의 연속

서로마가 멸망한 뒤에도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은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은 1000년 가까이 더 존속했다.[2] 동로마는 로마법·그리스 문화·기독교 전통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간 문명권 역할을 했다. 14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팽창으로 영토가 급격히 줄어들다가 1453년 5월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의 공격으로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며 로마 제국의 역사가 마침내 끝을 맺었다.

5. 문화·법·언어의 유산

로마 제국의 가장 큰 유산은 법, 언어, 건축의 세 분야에서 두드러진다.[3]

로마법은 근대 유럽연합을 포함한 유럽 대부분 국가의 민법 체계 기반이 됐다. 계약·소유권·불법행위 등의 법 개념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라틴어는 스페인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루마니아어로 이루어진 로망스어군을 낳았고, 영어를 포함한 많은 언어에 방대한 어휘를 제공했다.

건축에서는 아치·볼트·돔 등의 공학 기법이 후대에 전수됐다. 콜로세움, 판테온, 트라야누스 포룸 같은 건축물은 오늘날도 원형을 유지하며 관광객을 맞이한다. 아우구스투스는 "나는 벽돌의 도시를 물려받아 대리석의 도시를 남겨준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비롯해 이후 수많은 군주와 정치 지도자들이 로마 제국의 권위를 자국 정통성의 원천으로 내세웠을 만큼, 로마의 상징적 위상은 문명사를 가로질러 현대까지 이어진다.

6. 관련 문서

  • 혼합주의 — 기독교 공인 이후 로마 제국에서 일어난 종교 융합 현상
  • 잉글랜드 — 로마 속주 브리타니아의 역사적 계승
  • 네덜란드 — 로마 시대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 지역
  • 나폴레옹 — 로마 황제의 권위를 의식하며 황제 즉위를 거행한 군사 지도자
  • 카니발 — 로마의 사투르날리아 축제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풍습

7. 인용 및 각주

[1] Augustus, Encyclopædia Britannica, W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2] Roman Empire, Encyclopædia Britannica, W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3] Roman Empire, World History Encyclopedia, Wwww.worldhistory.org(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