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 1467/1468년경 ~ 1520년경)은 포르투갈어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탐험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귀족·군인·항해사이다. 1500년 인도로 향하는 원정대를 이끌던 중 대서양 서편을 항해하다 남아메리카 동쪽 해안에 도달하여 오늘날의 브라질 영토를 포르투갈 왕실에 귀속시켰다. 그는 한 번의 항해에서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 네 대륙을 모두 밟은 역사상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며, 그의 항해는 포르투갈 제국이 대서양 양안으로 뻗어 나가는 기틀을 마련했다.[1]

1. 생애 초반과 가문

카브랄은 포르투갈 중부 벨라 바이샤 지방의 베우몬테(Belmont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페르낭 카브랄(Fernão Cabral)은 지역 귀족으로 포르투갈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이사벨 드 고우베이아(Isabel de Gouveia)였다. 카브랄은 어릴 때부터 왕실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고, 1497년에는 마누엘 1세(Manuel I)의 왕실 의회 고문으로 임명되어 정치적 신망을 얻었다.[2]

당시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가 1488년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남단 항로를 개척했고,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1498년 인도양을 건너 인도 캘리컷(Calicut, 현재의 코지코드)에 도달해 향신료 직항로를 열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마누엘 1세는 인도와의 정기 무역을 제도화하기 위한 두 번째 대규모 원정을 기획했고, 카브랄을 그 지휘관으로 낙점했다.[3]

2. 1500년 대원정

2.1 출항과 편성

1500년 3월 9일, 카브랄은 리스본의 타구스(Tagus) 강 하구를 떠났다. 원정대는 총 13척의 함선과 약 1,200명의 선원·병사·성직자로 편성된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포르투갈 인도 원정이었다. 함대에는 이미 희망봉을 돌아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도 함장 가운데 한 명으로 포함되어 있었다.[4]

2.2 브라질 도달 — 우연인가 의도인가

카브랄의 함대는 바스쿠 다 가마가 확립한 항로를 따라 아프리카 서안을 내려가다가, 남 대서양의 무역풍과 해류를 활용하기 위해 서쪽으로 크게 우회했다. 이 과정에서 함대는 아프리카 해안에서 멀리 벗어나 대서양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1500년 4월 22일, 함대는 남위 약 17도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육지를 발견했다. 카브랄은 이를 처음에는 섬으로 여겨 '진정한 십자가의 섬(Ilha de Vera Cruz)'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일부, 오늘날 브라질 바이아(Bahia) 주 포르투 세구루(Porto Seguro) 근방이었다.[1]

이 발견이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순전한 항해 이탈의 결과인지는 역사학계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다. 전통적 견해는 남대서양의 강한 편서 해류와 바람에 의해 서쪽으로 밀려났다는 '우연설'을 지지한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카브랄이 다 가마의 항로 개척 당시 이미 서쪽 육지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에 따라 포르투갈 영토에 속할 그 땅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도설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문서 증거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3]

2.3 브라질 체류와 포르투갈 영유권 선언

카브랄의 함대는 약 열흘간 브라질 해안에 머물렀다. 선원들은 현지에 큰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포르투갈 왕실의 이름으로 이 땅의 영유권을 선포했다. 원정대는 현지 원주민(투피어를 사용하는 선주민 집단)과 평화롭게 접촉했고, 선교사들은 종교 의식을 거행하며 기독교적 관계 수립을 시도했다. 카브랄은 함선 한 척을 포르투갈로 돌려보내 이 발견을 마누엘 1세에게 즉시 보고했다.[4]

포르투갈 왕실은 처음에 이 땅을 '산타 크루스의 땅(Terra de Santa Cruz)'이라 불렀으나, 이후 이 지역에서 대량으로 채취된 붉은 염료용 나무인 브라질우드(pau-brasil)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민간에서는 '브라질(Brasil)'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오늘날 브라질이라는 국명의 어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2]

3. 인도 항해와 교역 활동

3.1 희망봉 폭풍과 함대 손실

브라질을 떠난 카브랄의 함대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향했다. 그러나 1500년 5월, 희망봉 근해에서 극심한 폭풍을 만나 13척 중 4척이 침몰했다. 이 사고로 베테랑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도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 남단 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했던 그가 바로 그 희망봉 해역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기록된다.[4]

3.2 캘리컷 도착과 충돌

생존한 함선들은 아프리카 동안의 모잠비크와 케냐를 거쳐 인도양을 건너 1500년 9월 13일 인도 캘리컷에 입항했다. 카브랄은 현지 힌두 왕 자모린(Zamorin)과 무역 협정을 맺으려 했으나, 아랍계 무슬림 상인들과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다. 협상 중 갑작스러운 분쟁이 발생해 포르투갈 상관(商館)이 습격받고 교역 대표단이 살해되었다. 카브랄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 상선 10척을 나포하고 포격을 가해 캘리컷 항구 일부를 파괴했다.[3]

3.3 코친 교역과 귀환

캘리컷에서의 충돌 이후 카브랄은 경쟁 항구인 코친(Cochin, 현재의 코치)과 카나노르(Cananore)로 이동해 후추, 계피, 생강 등 귀중한 향신료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인도를 떠나 귀환하는 항해에서 또 두 척을 잃었지만, 카브랄의 함대는 1501년 6월 23일 리스본 타구스 강 하구에 도달했다. 출발 당시 13척이던 함대에서 단 4척만이 귀환한 셈이었으나, 선적한 향신료의 교역 수익은 포르투갈 왕실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다.[1]

4. 귀국 이후와 만년

카브랄의 귀환은 포르투갈 왕실에서 성공적인 항해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마누엘 1세는 다음 인도 원정 지휘권을 놓고 카브랄과 바스쿠 다 가마 사이에서 저울질한 끝에 최종적으로 다 가마를 선택했다. 일설에는 카브랄이 원정 과정에서 입은 큰 손실을 둘러싼 책임 논란과 다 가마의 반대가 작용했다고 전한다.[2]

이후 카브랄은 공식적인 원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베이라 바이샤(Beira Baixa) 지방의 영지로 물러났다. 그는 귀족 가문 출신의 이사벨 드 카스트루(Isabel de Castro)와 결혼해 여러 자녀를 두었으며, 만년에는 산타렝(Santarém) 인근의 영지에서 조용히 살다 1520년경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1848년 브라질 역사학자 프란시스쿠 아돌푸 바르냐겐(Francisco Adolfo Varnhagen)의 연구로 산타렝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확인되었다.[2][4]

5. 역사적 유산

카브랄의 브라질 도달은 포르투갈 제국사에서 인도 항로 개척과 함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에서 300년 이상 식민 통치를 유지한 결과,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가 되었으며 2억이 넘는 인구가 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쓴다.[3]

브라질에서는 카브랄을 '브라질의 발견자'로 기리는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포르투 세구루에는 그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4월 22일은 브라질에서 '발견의 날'로 기념된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는 아메리카 대륙 선주민의 관점에서 '발견'이라는 표현 자체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카브랄 이전부터 수천 년간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를 중심에 놓는 시각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1]

포르투갈에서는 카브랄의 고향 베우몬테에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으며, 수도 리스본의 여러 공공장소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의 1500년 원정은 바스쿠 다 가마의 항로 개척과 더불어 포르투갈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핵심 사건으로 역사 교육에서 다루어진다.[4]

6. 관련 문서

7. 인용 및 각주

[1] Encyclopædia Britannica, "Pedro Álvares Cabral", W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2] Encyclopedia.com, "Pedro Alvares Cabral", Wwww.encyclopedia.com(새 탭에서 열림)

[3] Ancient Origins, "Pedro Alvares Cabral: The Lucky Lost Navigator Who Made Brazil Portuguese", Wwww.ancient-origins.net(새 탭에서 열림)

[4] Mariners' Museum, Ages of Exploration, "Pedro Álvares Cabral", Eexploration.marinersmuseum.org(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