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제국(케추아어: Tawantinsuyu, 타완틴수유)은 15세기 초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일대를 지배한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 최대의 제국이다. 제국의 정치·군사·행정 중심지는 현재 페루 남부 고지대에 위치한 쿠스코(Cusco)였으며, 1533년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약 100년 동안 존속하였다.[1]
1. 기원과 성장
잉카인들은 12세기경 쿠스코 주변에 작은 도시 국가를 세우며 역사에 등장한다. 초기 잉카는 쿠스코 계곡 일대의 소규모 부족 집단에 불과하였으나, 점차 인근 세력을 흡수하며 성장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태양신 인티(Inti)의 아들 만코 카팍(Manco Cápac)이 왕조를 창시하였다고 한다.
잉카 제국의 실질적인 창건자는 9대 사파 잉카 파차쿠티(재위 1438~1471)이다. 파차쿠티는 '세상의 변혁자'라는 뜻의 이름에 걸맞게, 찬카(Chanca)족의 침공을 물리친 뒤 대규모 정복 전쟁을 개시하였다. 그는 케추아어를 제국의 공용어로 선포하고, 쿠스코를 석조 건축물로 재건하였으며, 신성한 의례 도시 마추픽추를 약 1450년경 건설하였다.[2] 파차쿠티의 아들 투팍 잉카 유팡키(Tupac Inca Yupanqui, 재위 1471~1493)는 제국의 영토를 남북으로 더욱 확장하여 현재의 칠레 중부와 아르헨티나 북서부까지 병합하였다.
전성기에 잉카 제국은 현재의 페루, 볼리비아 서부, 아르헨티나 북서부, 칠레 북부, 에콰도르, 콜롬비아 남부까지 포함하는 약 200만 km²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였다.[1]
2. 정치와 행정 구조
잉카 제국의 최고 통치자는 사파 잉카(Sapa Inca)로, 태양신 인티의 화신으로 신성시되었다. 사파 잉카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종교 의례의 최고 사제 역할도 수행하였다. 왕위 계승은 원칙적으로 가장 유능한 아들에게 이어졌으나, 왕위 계승 분쟁이 잦았다.
타완틴수유는 네 개의 수유(Suyu)로 구분되어 통치되었다. 친차이수유(북서), 안티수유(북동), 쿤티수유(남서), 콜라수유(남동)가 쿠스코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각 수유는 아포(Apo)라 불리는 총독이 관할하였다.[1] 제국은 정복한 민족들에게 케추아어 학습과 태양신 숭배를 강요하는 한편, 현지 지도층을 행정에 편입하는 유연한 통합 정책을 병행하였다. 키푸(Quipu)라 불리는 매듭 기록 체계는 인구·세금·물자 등 행정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사용되었다.[3]
3. 경제와 사회
잉카 제국은 화폐 경제 없이 미타(Mit'a)라는 강제 노동 제도를 통해 운영되었다. 성인 남성은 농업, 건설, 군사 등 국가 사업에 일정 기간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다. 국가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식량, 의복, 도구를 지급하였다.[3]
잉카 제국의 가장 인상적인 인프라는 총 길이 약 4만 km에 달하는 도로망이다. 카팍냔(Qhapaq Ñan, '왕의 길')으로 불리는 이 도로망은 안데스산맥 고지대와 해안 저지대를 연결하였다. 차스키(Chasqui)라 불리는 전령 주자들이 이 도로를 이용해 메시지와 물자를 릴레이 방식으로 신속히 전달하였다.
잉카의 계단식 농경지(테라스)는 안데스산맥 급경사면을 경작 가능한 토지로 변환시킨 탁월한 기술의 산물이다. 감자, 옥수수, 퀴노아 등이 주요 작물이었으며, 국가는 수확물을 창고에 비축하여 가뭄이나 재해 시 재분배하는 복지 시스템을 운영하였다.[3]
4. 종교와 문화
잉카의 국가 종교는 태양신 인티 숭배를 중심으로 하였다. 쿠스코의 코리칸차(Qorikancha, 태양의 신전)는 제국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황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인티라이미(Inti Raymi, 태양 축제)는 동지 무렵 거행되는 최대 국가 행사였다.[1]
잉카의 석조 건축 기술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수준이었다. 시멘트 없이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맞물려 쌓는 방식으로, 대규모 지진에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 탁월한 내진 구조를 갖추었다. 쿠스코의 삭사이와만(Sacsayhuamán) 요새와 마추픽추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잉카 제국의 공용어인 케추아어(Quechua)는 파차쿠티가 제국 전역에 보급하였다. 오늘날에도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지에서 약 800만 명 이상이 케추아어를 사용하며, 페루에서는 스페인어와 함께 공용어 지위를 유지한다.[1]
5. 스페인의 정복
16세기 초 와이나 카팍(Huayna Capac) 황제 사후, 왕위를 놓고 형제인 우아스카르(Huáscar)와 아타우알파(Atahualpa)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였다. 1532년 아타우알파가 내전에서 승리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제국의 군사력과 결속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532년 11월,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약 180명의 병사가 북부 고지대 도시 카하마르카(Cajamarca)에서 아타우알파의 군대와 조우하였다. 피사로는 기습으로 아타우알파를 생포하였다. 아타우알파는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황금과 은을 몸값으로 지불하였으나, 피사로는 약속을 어기고 1533년 8월 29일 아타우알파를 처형하였다.[4]
아타우알파의 처형 이후, 잉카 제국은 급격히 붕괴하였다. 스페인군은 쿠스코를 점령하고, 잉카 귀족 일부를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웠다. 마지막 잉카 저항 세력인 빌카밤바(Vilcabamba)의 신(新)잉카 국가는 1572년 스페인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었다.[4]
6. 유산
8. 인용 및 각주
[1] "Inca Empire", Encyclopædia Britannica, 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
[2] "Pachacuti Inca Yupanqui", World History Encyclopedia, www.worldhistory.org(새 탭에서 열림)
[3] "Inca: Empire, Religion & Civilization", HISTORY, www.history.com(새 탭에서 열림)
[4] "Atahuallpa", Encyclopædia Britannica, www.britannica.com(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