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天然痘, smallpox)는 바리올라 바이러스(Variola virus)가 일으키는 고도 전염성 바이러스성 감염병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질병 중 하나다. 수천 년에 걸쳐 전 세계를 반복적으로 휩쓸며 감염자의 약 30%를 사망에 이르게 했고, 생존자에게도 심각한 흉터와 시력 손상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두창(痘瘡)·마마·손님·포창(疱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내내 왕실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1]

1796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접종법을 개발하면서 예방의 길이 열렸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집중 박멸 프로그램을 거쳐 1980년 5월 8일 인류가 자연 발생을 완전히 종식시킨 유일한 인간 감염병이 됐다.[2]

1. 병원체와 분류

천연두의 원인체인 바리올라 바이러스는 폭스바이러스과(Poxviridae) 척추동물폭스바이러스아과(Chordopoxvirinae) 오르토폭스바이러스속(Orthopoxvirus)에 속한다. 바이러스 입자는 벽돌 모양으로 약 300 × 250 × 200 나노미터 크기이며, 선형 이중가닥 DNA 유전체를 갖는다.[3]

임상적으로 두 가지 주요 변종이 존재한다.

  • 바리올라 마요르(Variola major): 가장 흔하고 중증인 형태로 비접종 집단에서 치사율이 약 30%에 달했다. 일반형 외에 악성형(flat type)과 출혈형(hemorrhagic type)이 있으며, 후자는 거의 모두 치명적이었다.
  • 바리올라 미노르(Variola minor, alastrim): 증상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태로 치사율은 1% 미만이었다.[3]

같은 오르토폭스바이러스속에는 우두(cowpox), 원숭이두창(mpox), 낙타두창 등이 포함된다. 이 계통 바이러스 간에는 교차 면역이 성립하며, 이것이 우두 접종으로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었던 근거다.

2. 증상과 임상 경과

바리올라 바이러스는 주로 호흡기 비말(약 2미터 범위)을 통해 전파되며, 미세 에어로졸이나 피부 직접 접촉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잠복기는 노출 후 7~19일이며, 대체로 10~14일 뒤 발진이 나타난다.[3]

임상 경과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1. 전구기(prodrome): 갑작스러운 고열(38.3°C 이상), 극심한 두통·요통·근육통, 구토와 전신 피로감이 2~4일간 지속된다. 2. 발진기: 얼굴과 손에서 시작된 발진이 몸통과 사지로 퍼진다. 발진은 반점(macule)→구진(papule)→수포(vesicle)→농포(pustule)→딱지(crust) 순서로 진행하는데, 홍역과 달리 동일 신체 부위의 병변이 모두 같은 단계에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3. 가피기: 2주가량 지난 뒤 딱지가 떨어지며 회복되지만, 심한 흉터(곰보 자국)와 실명이 후유증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4]

3. 역사

3.1 고대와 중세

천연두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157년경 사망한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발견된 피부 병변이 천연두의 흔적일 가능성이 제기됐으며, 중국에서는 4세기경 문헌 기록이 등장한다.[1]

6세기경 일본에 전파됐고, 7~8세기 아랍 세계의 팽창과 함께 북아프리카와 유럽으로 확산됐다. 유럽에서는 중세 내내 반복적으로 유행하면서 왕족과 귀족까지 휩쓸었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로마제국 쇠락의 배경 중 하나로 천연두 대유행을 꼽기도 한다.

3.2 아메리카 대륙 정복과 천연두

15~16세기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면서 천연두는 면역이 전혀 없던 원주민 사회를 초토화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1519~1521)과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잉카 정복(1532~1572) 시기에 천연두가 앞서 퍼져 원주민 인구를 수십에서 수백만 명 단위로 줄인 것으로 추산된다.[2] 남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의 붕괴에는 천연두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후 호주 원주민 역시 유럽인 정착 이후 천연두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3.3 18세기 — 인두법과 우두법

18세기에 천연두를 통제하려는 과학적 시도가 본격화됐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천연두 환자의 딱지를 건강한 사람의 피부에 접종하는 인두법(variolation)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 방법은 완전한 감염에 비해 치사율을 낮추었지만, 여전히 접종자 일부가 사망하거나 타인에게 전파하는 위험이 있었다.

1796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젖소의 우유 짜는 여성들이 가벼운 우두에 걸린 뒤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는 우두를 앓은 세라 넬름스의 고름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에게 접종한 뒤, 두 달 후 천연두 바이러스를 노출시켜도 발병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우두 접종법(vaccination)이었다.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 자체가 '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했다.[5]

19세기 중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의무 접종이 시행됐으며, 점차 전 세계로 확산됐다.

4. 한국의 천연두

4.1 삼국시대~고려시대

한국에서 천연두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간접적으로 등장하며, 고려 의서 《향약구급방》에는 두창형 발진에 대한 치료법이 기술되어 있다.

4.2 조선시대의 대유행

조선시대에 천연두는 전 시기를 통틀어 가장 무서운 역병 중 하나였다. 1418년부터 1910년 사이에 조선왕조실록에만 40건 이상의 유행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4세 이전 영아 사망의 40~50%가 천연두로 인한 것이었다는 추정도 있다.[6] 왕실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러 왕과 세자가 두창으로 목숨을 잃거나 곰보 자국을 안고 살았다.

조선에서 천연두는 신적 존재처럼 여겨져 마마(媽媽) 또는 손님이라 불렸다. 전통 의학에서는 '태독설(胎毒說)'—모체의 독이 태아에 잠복하다가 발현한다는 이론—로 설명했으며, 두진(痘疹) 전문 의관인 두의(痘醫)를 별도로 두었다.

4.3 지석영과 종두법 도입

정약용이 조선 최초로 우두법을 소개하고 제자 이종인과 함께 시행을 시도했으나, 당시의 서학 배척 풍조로 확산되지 못했다.

근대적 종두법의 보급은 1879년 지석영(池錫永)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석영은 부산의 일본 해군 제생의원에서 2개월간 종두법을 배워 두묘(痘苗) 3병과 종두침 2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서울로 귀환하는 길에 충청도 충주군 덕산면 처가에 들러 40여 명에게 처음으로 종두를 실시했다. 이후 그는 정부를 설득해 전국 단위의 우두 접종을 제도화하는 데 앞장섰다.[6] 1945년 해방 이후 보건 행정이 정비되면서 천연두 접종이 체계화됐고, 1959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천연두 발생이 사실상 종료됐다.

5. WHO 박멸 프로그램

5.1 프로그램 개요

1958년 세계보건총회(WHA)는 천연두의 전 지구적 박멸을 의결했고, 1959년 WHO는 공식 박멸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초기에는 자원 부족과 불충분한 참여로 성과가 미흡했다.

1967년부터 시작된 집중 박멸 프로그램(Intensified Eradication Programme)은 전략을 전환해 새로운 성과를 거뒀다. 핵심 방법은 두 가지였다.

  • 동결건조 백신: 소련이 고온에서도 효력을 유지하는 동결건조 백신을 대량 공급해 열악한 인프라 지역에서도 접종이 가능해졌다.
  • 링 접종법(ring vaccination): 전 집단을 일률 접종하는 대신, 확진자 주변을 빠르게 추적해 접촉자를 집중 접종하는 전략으로 효율을 높였다.[5]

5.2 지역별 박멸 순서

5.3 마지막 사례들

  • 자연 발생 마지막 사례는 1977년 10월 소말리아의 알리 마우 마알린(Ali Maow Maalin)이다. 그는 바리올라 미노르에 감염됐으며 회복했다.
  • 자연 발생 바리올라 마요르의 마지막 사례는 1975년 방글라데시의 세 살 라히마 바누(Rahima Banu)였다.
  • 1978년 9월 영국 버밍엄 의대 의료 사진사 재닛 파커(Janet Parker)가 연구소 사고로 감염·사망한 것이 인류 마지막 사망 사례다.

1979년 12월 독립 위원회가 박멸을 인증했고,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총회가 천연두 박멸 선언을 공식 채택했다. 이는 인류가 자연 발생을 완전히 종식한 유일한 인간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중보건 업적으로 평가된다.[2] 박멸 프로그램 총 비용은 약 3억 달러였으며, 그중 3분의 2는 풍토병 국가들이 자체 조달했다.[5]

6. 박멸 이후 — 바이러스 보존과 생물안보

6.1 바이러스 저장소

WHO 결의에 따라 바리올라 바이러스 생체 시료는 현재 두 곳의 WHO 공인 저장소에만 보관돼 있다.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애틀랜타
  • 러시아 국립 바이러스학·생명공학연구센터(VECTOR), 콜초보

나머지 국가의 시료는 모두 폐기됐으며, WHO는 이 두 시설에 대해 격년 주기 생물안전 점검을 실시한다.[4]

6.2 백신 비축과 생물테러 우려

1980년 이후 천연두 백신 접종이 중단되면서 현재 인류 대부분은 천연두에 면역이 없는 상태다. 이 취약성과 합성생물학의 발전은 생물테러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실험실에서 오르토폭스바이러스 게놈 전체를 합성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4]

WHO와 미국 정부는 유사시를 대비해 전 세계 인구를 접종할 수 있는 규모의 두묘 비축을 유지하고 있다. 치료제로는 시도포비르(cidofovir) 및 그 유도체가 연구됐으며, 2018년 미국 FDA는 천연두 치료제 테코비리마트(tecovirimat)를 승인했다.

7. 문화적·역사적 유산

천연두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 질병으로 자주 거론된다. 유럽 군주 가운데 루이 15세(프랑스), 조제프 1세(신성로마제국) 등이 천연두로 사망했으며, 스페인·포르투갈의 아메리카 정복에서 원주민 사회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한국에서도 조선 왕실 족보를 살펴보면 천연두로 목숨을 잃은 왕자·공주 기록이 적지 않다.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 접종법 발견은 근대 면역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제너는 "훗날 백신 접종이 천연두를 지구에서 소멸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그로부터 약 180년 뒤 그 예언이 현실이 됐다.[5]

8. 관련 문서

  • 남아메리카 — 천연두가 원주민 사회에 끼친 영향
  • 호주 — 유럽인 정착 이후 천연두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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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DC, "History of Smallpox," Wwww.cdc.gov(새 탭에서 열림)

[2] WHO, "Smallpox," Wwww.who.int(새 탭에서 열림)

[3] Public Health Agency of Canada, "Pathogen Safety Data Sheet: Variola virus," Wwww.canada.ca(새 탭에서 열림)

[4] PMC, "40 Years without Smallpox," Ppmc.ncbi.nlm.nih.gov(새 탭에서 열림)

[5] WHO, "History of Smallpox Vaccination," Wwww.who.int(새 탭에서 열림)

[6]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창,"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