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시계는 물이 늘거나 줄어드는 양을 이용해 시간을 재는 장치다. 물통에서 빠져나가 낮아지는 수위를 재는 유출식과, 물통으로 들어와 높아지는 수위를 재는 유입식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출식이 먼저 쓰였고, 한나라 이후에는 유입식이 주로 사용되었다.[1][4]

1. 개요

유입식 물시계는 물을 받는 통에 부표를 띄우고 눈금 잣대를 세워, 물이 차오를 때 부표와 잣대가 올라가는 정도를 읽는다. 물의 흐름을 안정시켜 수위가 일정한 간격으로 변하게 하면 시간 간격도 더 정확하게 잴 수 있다.[1][4]

조선에서는 누각이 국가 표준시계로 쓰였으며, 1434년 완성된 자격루는 정해진 시각에 종·북·징을 자동으로 울리는 장치를 갖췄다. 세종 때 제작된 자격루는 남아 있지 않고, 현재 덕수궁에는 1536년에 만든 물통 일부가 보관되어 있다.[4][5]

2. 측정 방식과 기본 구조

유출식은 물통에서 흘러나가며 낮아지는 수위를, 유입식은 물통에 들어와 높아지는 수위를 읽는다. 유입식에서는 물을 받는 통에 부표를 띄우고, 눈금을 새긴 잣대를 부표에 붙여 물이 차오르는 만큼 눈금이 움직이게 한다.[1][4]

누각은 물을 담아 보내는 누호, 물 위에 뜨는 전주, 눈금이 있는 누전으로 구성된다. 수수형에서는 높은 곳의 파수호에서 물이 수수호로 흘러들고, 수수호 안의 전주가 수면을 따라 오르면서 누전을 밀어 올린다.[4]

3. 수압 조절과 시간 측정의 정확성

물의 흐름이 일정해야 수위가 일정한 간격으로 바뀌므로, 물시계의 정확성에는 수압 조절이 중요하다. 한 방법은 물을 처음 대는 통과 받는 통 사이에 여러 통을 단계적으로 놓는 것으로, 당나라 여재의 물시계는 수수호 외에 물통 네 개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1][2]

더 정교한 방법으로는 물을 대는 통의 수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오버플로 방식과 플로트밸브 방식이 있다. 오버플로 방식은 물이 일정 높이에 이르면 구멍으로 넘치게 하고, 플로트밸브 방식은 수면 높이에 따라 물이 나가는 구멍을 열거나 닫는다. 송나라 연숙이 만들었다는 연화루는 오버플로 방식의 사례다.[1][2]

4. 한국의 물시계와 국가 표준시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718년 누각전을 두고, 749년 누각박사 6인과 천문박사 1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태조 때인 1398년에는 표준시계로 쓰기 위해 종로에 경루가 설치되었다.[4]

조선시대 누각은 국가 표준시계로 이용되었다. 세종 때 장영실과 김빈 등이 만든 자격루는 1434년에 완성되어 새로운 표준시계로 쓰였으며, 1536년에 제작된 물시계는 효종 때 이후 조선 말까지 누국에서 표준시계로 사용되었다.[4][5]

5. 자격루의 자동 시보 장치

자격루는 물시계에 자동 시보 장치를 더해 시·경·점에 맞춰 종·북·징을 치도록 만든 장치다. 보루각의 자격루는 파수호와 수수호, 살대, 동력 전달 장치와 시보 장치로 이루어졌고, 파수호의 물이 수수호로 들어오면 살대가 떠올랐다.[5]

살대가 물에 뜨며 얻는 부력은 지렛대와 쇠구슬에 전달되었고, 구슬이 떨어지면서 시보 장치를 움직였다. 목인 세 명은 각각 종으로 시각을, 북으로 경을, 징으로 점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5]

6. 현존 유물과 보존

세종 때 만든 자격루는 소실되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덕수궁에는 1536년에 제작된 파수호와 수수호가 보관되어 있으며, 청동으로 만든 물통들로 이루어져 있다.[4][5]

1536년 물시계는 원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로 만들어졌다. 물통 사이에서 물을 보내던 관은 오래되어 파손되었으며, 유물은 1945년까지 창경궁에 보존되다가 광복 후 덕수궁으로 옮겨졌다.[4][5]

7. 관련 문서

  • 자격루
  • 누각
  • 앙부일구

8. 인용 및 각주

[1]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2]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4]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5]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