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은 문서·그림·영상 등 형식에 관계없이 사람의 의사 표현을 공권력이 강제로 검사하거나 열람하는 국가기관의 활동이다. 대한민국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을 인정하지 않으며, 헌법재판소는 특히 행정권이 표현 발표 전에 내용을 심사해 억제하는 사전검열을 금지 원칙의 중심으로 다룬다.[4]

1. 개요

사전검열은 표현물을 허가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고, 행정권이 발표 전에 내용을 심사하며, 허가받지 않은 표현을 금지하고, 심사를 강제할 수단을 갖춘 절차인지에 따라 판단한다. 따라서 행정기관의 명칭이나 형식보다 절차가 실제로 표현의 발표를 행정권의 허가에 맡기는지가 중요하다.[4]

검열 금지의 취지는 예술 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보호하고, 집권자에게 불리한 표현이 미리 억제되어 관제 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 허용되는 일을 막는 데 있다. 이 원칙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헌법적 논의의 중심에 놓여 있다.[4]

한국의 역사에서 검열과 표현 통제는 출판물과 방송에 대한 조치로도 나타났다. 1980년대에는 정기간행물 등록 취소,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과 서점 단속이 시행됐으며, 이에 맞선 언론인의 저항과 통제 완화도 이어졌다.[1][3]

2. 사전검열의 성립 요건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첫 번째 기준은 표현물을 허가받기 위해 미리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지다. 제출 의무가 발표 전에 내용 심사를 받도록 하는 관문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핀다.[4]

두 번째로 심사 절차의 주체와 시점을 확인한다. 행정권이 발표 전에 표현의 내용을 심사·선별해 발표를 억제하는 구조인지가 기준이며, 독립적인 위원회라도 행정권이 절차를 만들고 기관 구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행정기관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제시됐다.[4]

세 번째는 허가받지 않은 표현을 금지하는지, 그리고 심사 절차를 실제로 관철할 강제 수단이 있는지다. 등록이나 신고는 원칙적으로 사전 허가·검열과 구별되지만, 등록제가 실질적으로 사전검열과 같은 효과를 내면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4]

3. 헌법상 금지의 취지

검열이 허용되면 국민의 예술 활동에서 독창성과 창의성이 침해되고 정신생활에도 위험이 생길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우려를 예술의 자유를 보호하는 사전검열 금지의 취지와 연결해 설명했다.[4]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표현을 발표 전에 억제하면 관제 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 허용될 우려가 있다. 이에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검열로 제한하는 일은 법률로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4]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의 금지를 특히 의사 표현의 발표 여부가 행정권의 허가에 달린 사전 심사에 적용해 왔다. 이 기준은 영화 심의 등 표현물에 대한 사전 절차가 검열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 데에도 관련된다.[4][2]

4. 1980년대 언론·출판 통제

1980년 신군부는 정기간행물 172종과 출판사 617곳의 등록을 취소하고, 언론인 1천여 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뿌리깊은나무』와 『창작과비평』 등 잡지도 폐간 대상에 포함되어 언론계와 문화예술인의 활동이 위축됐다.[1]

같은 해 언론 통폐합으로 동양방송과 동아방송은 KBS에 흡수됐고, 기독교방송의 보도·광고 기능은 정지됐다. 방송국 통합은 취재와 보도를 억압했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소재를 선택하고 창작할 자유에도 제약을 가했다.[1]

출판 통제에는 납본필증을 내주지 않는 방식과 서점 단속도 쓰였다. 공무원들은 서점에서 불온도서를 단속했고, 1985년과 1986년에는 출판사·서점 등에 대한 대대적 단속과 도서 압수, 판매 금지, 관련자 연행이 이어졌다.[1]

5. 검열과 영화 등급분류 논란

헌법재판소는 영화 검열을 금지하는 한편, 영화의 상영등급분류제도는 원칙적으로 허용해 왔다. 그러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둘러싼 위헌성 논란은 계속됐고, 등급분류가 표현을 억제하는 절차라면 검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됐다.[2]

이 논란은 행정기관이 심의하는 등급분류가 사전검열 금지 원칙과 어떻게 양립하는지에 관한 쟁점과 연결된다. 한 연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행정 심의에서 벗어난 자율심의를 대안으로 제안하며, 예술 표현의 자유와 성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할 필요성을 논했다.[2]

6. 언론 탄압에 대한 저항과 통제 완화

1970~80년대 언론 탄압에 맞선 활동으로 자유언론실천선언, 백지광고 사태, 보도지침 폭로와 해직 언론인들의 투쟁이 소개된다. 이 활동들은 언론 자유를 지키려는 저항의 역사에 포함된다.[3]

1980년대에는 기존 문학적 위계에 반발하고 노동자와 민중을 중심으로 한 관점을 제시하는 무크지도 등장했다. 1987년 이후 정기간행물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점차 완화되면서 무크지의 발언 공간은 전통적인 문학 매체로 옮겨갔다.[1]

1987년 6월항쟁과 여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로 금서가 해제됐다. 이는 출판 통제가 완화되는 흐름의 일부였으며, 앞서 이어진 언론인의 저항과 함께 표현의 자유가 확장된 역사적 맥락을 이룬다.[1][3]

7. 관련 문서

  • 언론·출판의 자유
  • 표현의 자유
  • 예술의 자유
  • 상영등급분류제도
  • 자율심의

8. 인용 및 각주

[1] Ccontents.history.go.kr(새 탭에서 열림)

[2] Ccloud.nanet.go.kr(새 탭에서 열림)

[3] Wwww.alioplus.go.kr(새 탭에서 열림)

[4]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