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는 자신들이 설계하고 제작한 플라이어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의 동력·조종 비행에 성공한 형제다.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에서 첫 비행을 했다.[2][4]

1. 개요

첫 비행은 12초 동안 이어졌고, 형제는 그날 세 차례 더 비행했다. 가장 긴 비행은 852피트를 날아 59초 동안 지속됐다.[2]

이들의 비행기는 오랫동안 연구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한 발명으로 평가되며, 항공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한 성취로 소개된다.[1][4]

2. 비행에 대한 관심과 항공 연구의 시작

형제는 1878년 아버지가 가져온 고무줄 동력 장난감 헬리콥터에 관심을 보였다. 장난감은 방을 가로질러 날아 천장에 닿은 뒤 내려왔으며, 오빌은 훗날 이 장난감이 형제의 비행 관심을 일으킨 계기라고 말했다.[4]

1896년 오토 릴리엔탈이 비행 사고로 사망하고, 새뮤얼 랭글리가 동력 모형을 무인 발사하는 일이 있었다. 두 사건은 형제의 비행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4] 릴리엔탈의 공기역학 자료는 형제의 글라이더 설계에 활용됐으며, 글라이더의 양력과 항력 계산이 예상과 맞지 않자 형제는 그 자료를 다시 검토했다.[2]

3. 자전거 사업과 실험 기반

윌버와 오빌은 1892년 라이트 자전거 회사를 세워 자전거를 판매하고 수리하며 제조했다. 자전거 사업은 성공을 거두었고, 항공 연구에 필요한 자금과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4]

오빌은 친구 에드 사인스와 인쇄업을 시작했고, 윌버도 사업에 합류했다. 형제는 직접 인쇄기를 만들었으며, 오빌은 마차의 접이식 덮개와 묘비, 다른 부품을 활용해 인쇄기를 만들기도 했다.[4]

형제는 자전거를 개조한 장치로 날개 단면의 양력을 측정했다. 이 장치는 기존 자료나 공기 밀도 계수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뒷받침했지만, 더 확실한 측정을 위해서는 풍동 같은 정밀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2]

4. 글라이더 연구와 삼축 조종

초기 글라이더 설계에는 양력과 항력에 관한 기존 계산, 오토 릴리엔탈의 공기역학 자료, 스미턴의 공기 밀도 계수가 활용됐다. 키티호크에서 글라이더가 계산만큼 양력을 내지 못하자 형제는 자료와 계수를 다시 검토하고 자전거를 이용한 측정 장치로 날개를 조사했다.[2]

1902년형 글라이더에는 움직이는 방향타가 더해졌다. 방향타를 날개 비틀기와 함께 조정해 선회 중 방향이 갑자기 뒤집히는 문제에 대응했고, 비행 중 균형과 조종을 개선했다.[2][3]

이 글라이더는 세 축, 즉 종축·횡축·수직축을 중심으로 조종할 수 있는 최초의 항공기로 소개된다. 형제는 9월과 10월에 글라이더를 거의 1,000회 비행하며 삼축 조종을 발전시켰다.[3]

5. 1903년 플라이어의 첫 동력 비행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5분, 자신들이 설계하고 제작한 플라이어를 키티호크에서 날렸다. 이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의 최초 동력·조종 비행으로 기록된다.[2]

첫 비행은 12초였으며, 형제는 같은 날 세 차례 더 비행했다. 가장 긴 비행은 852피트, 59초를 기록했다.[2] 이 비행은 항공기가 동력과 조종을 갖추고 실제로 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1][2]

6. 항공 사업과 활동

1903년 이후 형제의 관심은 항공에 집중됐다. 1908년에는 유럽과 미국에서 항공기 회사를 세웠고, 1910년까지 비행 기술을 세계에 가르쳤다고 소개된다.[4]

형제는 키티호크에 돌아와 글라이더와 비행 연습을 이어갔다. 오빌은 1911년 10월 24일 키티호크에서 9분 45초 동안 활공해 세계 활공 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10년간 유지됐다.[4]

7. 관련 문서

  • 플라이어
  • 글라이더
  • 오토 릴리엔탈

8. 인용 및 각주

[1] Aairandspace.si.edu(새 탭에서 열림)

[2] Aairandspace.si.edu(새 탭에서 열림)

[3] Wwww.nps.gov(새 탭에서 열림)

[4] Wwww.nps.gov(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