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은 1905년의 혁명과 1917년의 2월·10월 혁명을 아우르는 사건이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으며, 임시 정부가 들어섰다.[7][10] 10월에는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가 임시 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새 정권을 세웠다.[7][11]
1. 개요
2. 혁명 전 러시아의 전쟁과 사회 불안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색을 보이던 가운데, 개혁을 요구하며 행진한 노동자들에게 발포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해 말에는 진압되었다.[1] 이처럼 전쟁의 부담과 정부에 대한 불만은 1917년 혁명 이전부터 쌓여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군은 병력과 포병 물자를 잃었고, 잇따른 패전과 식량·물자 부족, 물가 상승은 사회 불안을 키웠다.[1][3]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제한, 안전한 작업 환경, 정치적 대표권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공장 노동자들이 만든 소비에트는 점차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확대됐다.[7]
3. 2월 혁명과 임시 정부의 과제
1917년 2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끝났다. 그 뒤 케렌스키를 중심으로 한 임시 정부가 수립됐으며, 임시 정부는 국민이 선출할 제헌의회 구성을 약속했다.[1][7][8] 그러나 전쟁 중에 선거를 치를 시기와 방법은 논란이 됐다.
임시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속했고, 러시아가 언제 어떻게 전쟁에서 빠져나올지를 둘러싸고 내부 분열을 겪었다.[1][8] 도시의 파업과 물가 상승, 전쟁과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 실패로 정부를 향한 불만이 커졌고,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내세우며 지지를 넓혔다.[7][8]
4. 볼셰비키의 봉기와 정권 수립
5. 혁명 정부의 정책과 내전
6. 관련 문서
- 1905년 러시아 혁명
- 피의 일요일 사건
- 2월 혁명
- 10월 혁명
- 볼셰비키
- 소비에트
- 러시아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