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愛國歌)는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뜻이며, 대한민국에서 국가로 사용된다.[1][2] 노랫말은 1907년 전후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조국애와 자주의식을 북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1][2] 현행 곡조는 작곡자 안익태가 1935년에 지었다.[1][5]

1. 개요

애국가의 노랫말은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현재의 내용을 갖추었다고 전해지며, 작사자는 확정되지 않았다.[1][5] 윤치호·안창호·민영환 등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설도 공인되지 않았다.[5] 오늘날에는 안익태의 곡조가 불리고, 노래는 네 절로 이루어져 있다.[5]

애국가가 국가로 자리 잡은 경위는 출처마다 표현이 다르다. 한 자료는 정부가 정식으로 제정하거나 채택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국가로 불렸다고 설명하고, 다른 자료는 1948년 정부 수립 뒤 공식 행사와 교과서를 통해 널리 불리기 시작했다고 기록한다.[1][5]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안익태 곡조를 채택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2]

2. 가사와 초기 애국가의 등장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랫말과 곡조가 붙은 노래가 나타난 것은 조선 말 개화기 이후이다.[2] 1896년 독립신문 창간 무렵 여러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실렸지만, 당시 이 노래들을 어떤 곡조로 불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2] 한편 대한제국이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를 만들어 주요 행사에 사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2]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는 배재학당 학생들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후렴이 포함된 애국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4][6] 이 기록은 현행 가사와 같은 후렴이 일찍부터 불렸음을 보여준다. 당시 노래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불렸다고 전해진다.[4][6]

현행 가사는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한 1907년 전후에 조국애와 자주의식을 북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1][2] 작사자에 관해서는 윤치호·안창호·민영환 등의 설이 있으나 공인된 결론은 없다.[5] 따라서 초기의 여러 애국가 가사와 오늘날의 노랫말을 한 사람이 한 번에 완성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2][5]

3. 곡조의 작곡과 사용 확산

현행 가사는 한동안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붙여 불렸다.[1][2] 해외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는 애국가를 외국 곡조에 맞춰 부르는 일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현재의 곡조를 작곡했다.[1][2] 이 곡조는 이후 현행 애국가의 선율로 자리 잡았다.[5]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를 애국가로 채택해 사용했다.[2] 다만 이 곡은 해외에서 퍼져 나갔고, 국내에서는 광복 이후 정부 수립 무렵까지 옛 민요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2][6] 1948년 정부 수립 뒤에는 현재의 애국가가 정부 공식 행사에서 불리고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1]

4. 곡의 구성과 연주 형태

애국가의 가사는 네 절로 되어 있고, 곡은 모두 16마디로 이루어진 두도막형식으로 설명된다.[5] 박자는 4분의 4박자이며, 속도는 느리고 분위기는 장중하다.[5] 이러한 구성은 간결한 선율에 무게감 있는 인상을 더한다.[5]

사용 형태는 피아노 반주가 있는 원곡, 반주 없이 부르는 형태,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형태로 나뉜다.[5] 피아노 반주가 있는 경우에는 네 마디의 전주가 있지만, 악기만으로 연주할 때는 전주가 없다.[5] 따라서 제창과 기악 연주에서는 전주 사용 방식이 같지 않다.[5]

5. 제창과 공식 행사에서의 예절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곡조를 바꾸거나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지 않도록 안내되어 있다.[3] 주요 행사에서 함께 부를 때에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네 절까지 제창하도록 한다.[3] 이는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방식에 관한 지침이다.[3]

모두 함께 부르는 경우에는 전주곡을 연주한다.[3] 반면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연주만 하는 의전 행사나 시상식·공연에서는 전주곡을 연주하지 않도록 안내한다.[3]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에는 일어서서 경청하는 것이 예의로 제시되어 있다.[3]

6. 관련 문서

7. 인용 및 각주

[1] Wwww.mois.go.kr(새 탭에서 열림)

[2] Ttheme.archives.go.kr(새 탭에서 열림)

[3] Wwww.mois.go.kr(새 탭에서 열림)

[4] Wwww.bsjunggu.go.kr(새 탭에서 열림)

[5]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

[6] Eencykorea.aks.ac.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