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독일 정치에 참여했다. 그는 나치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1933년 1월 30일 독일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었다.[7][2]

1. 개요

히틀러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거나 직접 선출된 것이 아니라, 당시 독일의 합법적 정치 절차를 거쳐 총리에 올랐다. 나치당은 선거에서 성장했지만 과반을 얻지는 못했고, 보수 정치인들의 설득과 정치적 거래가 임명에 영향을 주었다.[2]

총리 취임 뒤 나치 정권은 권리를 제한하고 국가 기관과 사회를 통제하며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히틀러는 독일의 팽창과 전쟁을 추진했고, 정권은 홀로코스트에서 유럽계 유대인 600만 명을 살해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살했으며, 독일은 같은 해 5월 항복했다.[1][3][4][5]

2. 초기 생애와 정치 활동

히틀러는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북부의 국경 마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1898년 린츠로 이사했고, 히틀러는 1908년부터 1913년까지 빈에서 살다가 뮌헨으로 갔다.[7]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입대한 그는 1916년과 1918년에 부상을 입었고 여러 메달을 받았다. 1918년 겨자 가스 공격으로 부분적으로 실명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휴전 소식은 회복 중 병상에서 들었다.[7]

전후 히틀러는 바이에른 군사 행정부의 정보 사무소에서 일하며 반공산주의 정치 교육을 맡았다. 1919년 반유대주의 연설을 했고, 그해 10월 나치당의 전신에 가입했다. 1921년에는 나치당의 지도자가 되었다.[7]

1923년 나치당은 뮌헨에서 바이에른 정부를 전복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히틀러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다.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쓰기 시작했으며, 석방 뒤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선거 정치에 참여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었다.[7]

3. 나치당의 성장과 집권

1923년 뮌헨 폭동이 실패한 뒤 히틀러와 나치당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으려 했다. 나치당은 1928년 총선에서 2.6%의 득표율에 그쳤지만, 1930년부터 대공황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지지를 늘렸다.[7][2]

실업과 빈곤이 심해지고 의회가 새 법을 통과시키기 어려워지자, 나치당은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을 선전으로 끌어모았다. 1930년 총선에서 나치당은 약 18%를 얻었고, 1932년 7월에는 37.3%로 가장 큰 정당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득표율은 33.1%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정당 중 가장 높았다.[2][7]

나치당은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히틀러를 총리로 만든 것은 직접 선출이 아니라 힌덴부르크의 임명이었다. 보수 정치인들은 나치당의 대중적 지지를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고 히틀러를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힌덴부르크는 1933년 1월 30일 그를 총리로 임명했다.[2][7]

4. 독재 체제의 구축

1933년 2월 28일 독일 의회에 방화 사건이 일어난 뒤 정부는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국가 비상사태도 선포되어 정부가 법령을 제정할 때 의회의 확인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1]

나치 정권은 개인과 기관이 정권의 목표에 협력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문화·경제·교육·법률을 통제하고 독일 교회에도 협력을 요구했으며, 정권의 목표와 이상을 알리는 선전을 광범위하게 펼쳤다.[1]

1934년 8월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히틀러는 대통령직에 해당하는 권한까지 장악했다. 군대와 공무원은 그에게 개인적 충성을 맹세했고, 지도자 원칙에 따라 히틀러는 법적 지위를 넘어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위치에 섰다.[1][7]

5. 팽창 정책과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외교 정책은 독일 민족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종적 믿음과 동유럽 및 소련으로 영토를 넓히려는 구상에 바탕을 두었다. 정권은 전쟁을 확장 정책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나치 이념에서 평화 시기는 독일 국민을 전쟁에 준비시키는 기간으로 여겨졌다.[1][7]

독일은 1938년 오스트리아를 강제로 병합했다. 같은 해 뮌헨협정에 따라 주데텐란트가 독일에 할양되었고, 독일은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지역도 점령했다.[3][8]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독일은 덴마크·노르웨이·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등 유럽 여러 지역을 침공해 점령했고, 1941년에는 소련을 침공했다. 1942년까지 병합·침략·점령과 동맹을 통해 독일은 유럽 대부분과 북아프리카 일부를 지배했다.[3]

6. 홀로코스트와 전쟁의 종말

나치 정권은 집권 직후 유대인을 즉시 대량 학살하기보다, 먼저 국가 권력을 이용해 유대인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집단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 박해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점차 과격해졌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유대인을 겨냥한 조직적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3]

홀로코스트에서 나치 독일과 동맹국 및 협력자들은 유럽계 유대인 600만 명을 살해했다. 독가스와 대량 총살이 주요 살해 방법이었고, 게토와 수용소에서의 의도적 궁핍과 폭력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나치 정권은 유대인 외에도 소련군 포로, 비유대인 폴란드인, 롬인, 장애인 등 여러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했다.[5]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는 유럽 전역의 유대인을 살해하는 계획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소련군은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진입해 약 7,000명의 수감자를 해방했다.[6]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자살했다. 독일은 5월 7일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했고, 항복은 5월 8일 발효되었다.[4]

7. 관련 문서

8. 인용 및 각주

[1]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2]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3]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4]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5]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6]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7] Eencyclopedia.ushmm.org(새 탭에서 열림)

[8] Wwww.yna.co.kr(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