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건국기의 정치인으로, 1801년부터 1809년까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을 지냈다.[4][5][6]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으며, 선언서는 여러 사람의 선택과 수정 끝에 대륙회의가 승인했다.[2][3]

1. 개요

그의 공적 활동은 대통령직에 그치지 않았다. 버지니아에서 정치 활동을 했고, 교육에 관심을 두어 버지니아 대학교의 설립과 교육과정, 건물 설계에 관여했다.[5][6] 대학 교육의 중심에 종교 교육 대신 과학 지식을 두고, 로툰다의 도서관을 계획의 중심에 놓았다.[1]

제퍼슨의 유산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한 사상과 노예 소유자로서의 행적이 함께 남아 있다. 그는 남부 식민지의 노예제 개혁을 지지하고 노예 수입 금지를 의회에 요청했지만, 자신도 노예를 소유했다.[4][6] 이 간극은 그의 정치적 이상과 실제 행적을 평가할 때 계속 논쟁의 쟁점이 된다.[7]

2. 독립혁명과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

1776년 제퍼슨은 독립선언서 초안을 맡아 작성했다. 그는 철학 지식과 버지니아 헌법, 권리 선언, 리처드 헨리 리의 결의를 바탕으로 초안을 마련했다.[2]

대륙회의는 초안을 그대로 승인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논의와 수정을 거쳤다. 1776년 7월 2일 독립 결의를 표결했고, 7월 4일에는 수정된 독립선언서를 승인했다.[3] 이 과정은 문서의 형성에 복수의 대표와 선택이 관여했음을 보여준다.[2][3]

3. 정치 경력과 대통령 취임

제퍼슨은 버지니아 하원에서 활동했고, 1779년부터 1781년까지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냈다.[6] 주 정치 경험은 독립혁명기의 정치 활동에 이어 대통령직으로 이어진 그의 경력의 일부였다.[5][6]

18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퍼슨과 애런 버는 같은 수의 선거인단 표를 얻었다. 대통령 선출은 하원으로 넘어갔고, 36차례 투표 끝에 제퍼슨은 1801년 2월 17일 대통령으로 선출됐다.[6] 그의 취임으로 연방파에서 공화파로 이어지는 미국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5]

4. 대통령 재임기의 정책과 영토 확장

제퍼슨은 1801년부터 1809년까지 두 임기를 대통령으로 지냈다.[5][6] 재임 중 프랑스와 협상을 시작해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을 추진했고, 이를 통해 미국 영토가 크게 확대됐다.[6]

매입 뒤 제퍼슨은 루이스와 클라크 원정을 승인해 새 영토를 탐사하고 지도화하도록 했다.[6]

5. 교육관과 버지니아 대학교

제퍼슨은 대학 교육의 주요 목적을 성직자 양성에 두던 기존 대학들과 달리, 교육과정에서 과학 지식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1] 종교 교육을 대학 학업과 분리하고자 교회나 예배당을 대학 설계에 포함하지 않았다.[1]

그는 버지니아 대학교의 건물 설계뿐 아니라 교육과정과 교수진 선정에도 관여했다.[5] 로툰다에 도서관을 두어 대학 계획의 물리적·상징적 중심으로 삼았으며, 그 도서관을 채울 약 7,000권의 책 목록도 마련했다.[1]

6. 노예제와 유산에 대한 평가

제퍼슨은 노예 소유자였지만 남부 식민지의 노예제 개혁을 주장했다.[6] 1806년에는 의회에 노예 수입 금지를 요청했고, 의회가 관련 법을 통과시킨 뒤 그 법에 서명했다.[6]

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는 노예 소유와 노예제에 관한 행적과 나란히 평가된다.[4][7] 따라서 제퍼슨의 유산은 정치적 이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그 이상과 실제 행위 사이의 모순을 함께 살피는 논쟁의 대상이다.[6][7]

7. 관련 문서

8. 인용 및 각주

[1] Wwww.nps.gov(새 탭에서 열림)

[2] Wwww.nps.gov(새 탭에서 열림)

[3] Jjeffersonpapers.princeton.edu(새 탭에서 열림)

[4] Uunisquads.io(새 탭에서 열림)

[5] Sshindonga.donga.com(새 탭에서 열림)

[6] Wwww.americanhistorycentral.com(새 탭에서 열림)

[7] Wwww.book21.com(새 탭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