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구는 몸을 치장하는 데 쓰는 도구다. 아름다움을 더하는 역할과 함께 착용자의 취향과 사회적 지위, 권위를 드러내는 표상으로도 쓰였다.[3][2]
1. 개요
2. 기원과 시대별 전개
장신구 치장은 구석기시대부터 나타난 인류의 보편적 풍습으로 설명된다. 초기에는 짐승의 뼈와 뿔로 만든 머리꽂이나 가슴걸이 등이 있었고,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이르며 신체 여러 부위를 꾸미는 형태가 발달했다.[3]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옥석을 갈아 만든 관옥과 짐승뼈 장식이 발견됐다. 청동기시대에는 장신구의 종류가 다양해졌으며, 삼국시대에는 금·은·금동으로 만든 화려한 장신구가 널리 제작되고 사용됐다.[3]
고려·조선시대에는 복식에 대한 제약의 영향으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한 장신구와 달리 질박한 형태가 나타났다.[3] 시대별 변화는 장신구가 공예품인 동시에 복식과 사회의 영향을 받는 물건이었음을 보여 준다.[2]
3. 형태와 착용 부위
장신구는 목걸이·귀걸이·팔찌·반지처럼 몸의 여러 부위에 착용하는 형태로 나뉜다. 뒤꽂이와 비녀는 머리를 꾸미거나 고정하는 데 쓰였고, 발찌도 신체 장식의 한 형태로 제작됐다.[2]
조선시대 여성 장신구는 착용 부위에 따라 패식·수식·지식으로 나뉜다. 패식은 저고리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는 노리개, 수식은 비녀나 떨잠 같은 머리 장식, 지식은 손가락에 끼우는 반지를 가리킨다.[4]
갓끈은 턱밑에서 갓을 고정하는 기능을 하면서, 구슬을 꿰어 갓을 꾸미는 역할도 했다. 사용 재료는 계급에 따라 달랐으며 옥·마노·호박·산호·수정 등이 쓰였다.[2]
4. 재료와 제작
시대와 장신구의 종류에 따라 조개·뼈·옥석·금·은·금동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됐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옥석 장식이 확인되고, 삼국시대에는 금속 공예기술을 바탕으로 금·은·금동제 장신구가 만들어졌다.[3]
고려시대에는 은제 장신구가 제작됐으며, 정교한 타출기법이 발달했다. 금·은·금동·백옥·수정 등으로 만든 은제병과 은제팔찌, 옥지환 같은 형태도 나타났다.[2]
조선시대 노리개에는 금·은·동과 옥석, 산호·진주·대모 같은 재료가 쓰였고, 비단에 색실이나 금은실로 수를 놓기도 했다. 값비싼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던 서민은 헝겊 조각을 이어 바늘집이나 괴불 같은 자수 장식을 만들어 착용했다.[1]
5. 기능과 상징
장신구는 몸을 꾸미는 기능 외에도 주술적 목적과 종교 의식, 호신, 권위와 부의 표현에 쓰였다.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표상인 동시에 부귀와 장수, 자손 번창 같은 염원을 담은 상징물이기도 했다.[2][3]
노리개의 장식에는 액막이와 복, 장수, 다산을 바라는 뜻이 담기곤 했다. 호랑이 발톱은 용맹함과 악귀를 쫓는 의미, 박쥐와 매미는 오복과 오덕, 석류·포도·연꽃은 다산, 거북과 천도는 장수의 상징으로 사용됐다.[1]
노리개는 실용적인 물건을 몸에 지니는 기능도 했다. 향갑에는 향을 담았고 바늘집노리개에는 바늘을 보관했으며, 장도노리개는 작은 칼을 장식해 일상용이나 호신용으로 사용했다.[1] 이처럼 장식물과 생활 도구의 경계가 한 물건 안에서 함께 나타났다.
6. 관련 문서
- 노리개
- 귀걸이
- 목걸이
- 삼국시대 장신구
- 조선시대 복식 장신구